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D-4 짐을 싸기 시작

비루하고 작디 작은 몸 하나 비행기를 타고 나를 아는 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싼다. 이곳에서 내가 버리고 가고싶은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지.. 짐을 싸면서 보니, 나는 가진 것이 참 많았다. 작은 캐리어 하나에 내 모든 것을 가져가려 했으나, 이내 이기지 못하고 큰 캐리어 하나를 구입하고 말았고, 결국 캐리어 2개를 모두 가져가기로 했다. 결국 짐을 다 넣고 보니, 내 가늘고 허약한 팔뚝으로는 잠시나마 들기도 버거웠다.

여행은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다. 나 자신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우유부단하고, 세상물정 모르며, 귀찮은 것을 기피하는 나에게, 여행이란 결코 그닥 멋진 경험이 될 수 없었다. (아직도 난, 내가 과연 죽기 전에 배낭여행을 내 능력으로 한번이라도 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퇴사하고 한달 가까운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여행 준비는 마냥 더디기만 했다. 그러다가 결국 일주일을 남기고 남들이 추천하는 가이드북을 하나 집어들고 1페이지부터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하나씩 읽고 있다. 천만다행으로 지금 준비해선 이미 늦은 것은 없는 듯 했다. (아니면, 그런 것이 있는데 내가 아직도 모르고 있다거나 -_-… 이런건 아닌지, 사실 조금 걱정되기도 함.)

짐을 싸면서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나의 여행.. 마냥 신나지만은 않다. 그곳에 나를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것이 사실이며, 이곳에서도 혼자였던 내가 그곳에서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아니 그것은 불보듯이 뻔한 일이지만 그래도 여행이니까… 그곳에 가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은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시간 여행에서 항상 나는 장미빛 기대에 부풀었다. 25살 나이에는 CPA합격 후의 미래.. 그리고 입사 직전에는 입사 후의 내 미래.. 그리고 20대 말엽에는 30살이 되고나면 그에 합당한(?) 인격적, 사회적 성숙함을 상상했다. 결국 모든 것들이 내 바람대로 되지 않았고, 나는 공간적 도피를 다시 한번 꿈꾸게 된다. 괜시리 허공에 대고 욕 한번 해댄후 땅에 침 한번 뱉으며

“그래.. 비행기를 타자.”

내가 모르는 그곳에는, 내가 모르는 그 어떤 재미난 일, 재미난 물건, 재미난 사람들이 날 반겨줄거야. 아니 그래야해..

왜냐면, 나는 앞으로의 거지같을 인생을 버둥대기 위한 위안거리를 잔뜩 안고 돌아와야할 테니…

아래는 사족.. What’s Inside My Luggage

팬티 10장… 양말 10장…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최장기간 세탁 지연기간 7일 +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프린스를 마주치고 너무 놀라 팬티에 지릴 것을 대비한 여분 3장)
캐쥬얼 셔츠 5장 (월+화+수+목+금).. 주말엔?? (주말되기 전에 쇼핑하면 되지.. -_-)
V-넥 니트 2개, U-넥 니트 1개, 여자 L사이즈 가디건 1개 (맞아요, 난 니트 중독… 하앍하앍 ㅠㅠ)
청바지 2개 + FW 울팬츠 1개, 울자켓 1개
베이지색 싸구려 트렌치코트 1개
어디에나 무난한 브룩스 브라더스 갈색 벨트 1개
폴로 니트 타이 1개 + Tie Bar 1개
아디다스 오리지널 슈퍼스타 1개, 컨버스 잭퍼셀 리미티드에디션 1개
Paula’s Choice 토너, 로션, BHA, 미샤 선블락, 화장솜 2박스(!!!)
폴스미스 토트백, 루이비통 Perfect Fake 토트백
Sony Nex-3 DSLR 1개 + 충전셋트
몰스킨 수첩 시티가이드북 뉴욕 1개
머플러 1개, 스톨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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