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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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조금 아팠는데, 병원에 가보니 의사가 한 1~2주 정도 이미 감기에 걸린 상태였었다고 했다. 골골된 상태로 술도 마시고 싸돌아다녔던 듯; 내 작은 몸뚱아리 조차 잘 가누지 못하고 무리하게 굴리곤 하는데, 빨리 감기가 다 나으면 등록한 동네 헬스장을 다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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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갔다가 약국에 들르기 위해 장교빌딩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가 길을 잃었다. 내가 길을 잃는 거야 뭐 매번 있는 일이지만 일게 건물 지하 1층에서 길을 잃다니...

이제 길치의 증세가 점점 더 세지는 것 같다.

작년 겨울, 누군가 내게 그랬다. 내가 길치인 것은 "실존주의자"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자신도 그러하다고 했다. 아직까지 나는 실존주의가 뭔지 모르고, 실존주의자가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말을 들은 것을 매우 뿌듯해 했다. (길치인 것은 나의 단점이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인 것이다.)

하지만 "실존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 좋게좋게 섞여 살아야 하는 환경에서는 썩 유익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좀 처럼 다른 사람이나 주변의 사물을 향해있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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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찾는 도중에 옛날 비디오 (VHS포맷)가 잔뜩 쌓여있는 가게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빔벤더스 감독의 Paris, Texas 비디오 테잎을 발견했다.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주인 아저씨에게 "저, 이 영화를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요, 이거 살게요, 혹시 빔벤더스 감독 다른 작품도 없나요?" 라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주인 아저씨가 빔번데스 감독의 작품 몇개를 말해주었으나, 짝퉁 팬인 것을 30초만에 들켜버리고는 황망히 몸을 날렸다.

왜 내가 더 호들갑을 떨수 있는 "베를린천사의시"는 없고, 죄다 내가 모르는 영화 제목뿐인거야... 이러니 내가 자신있게 덕질할 수 있는 건 프린스 밖에 없는 거잖아...

가끔씩은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 과정이 지극히 우연인 것에 새삼 놀라곤 한다. 비록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런 우연한 일이 마치 사지도 않은 복권에 당첨된 것 처럼 기쁘고 소중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p.s. VHS비디오 기기도 없으면서 영화는 왜 샀냐고? 실존주의자의 관심을 끈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운명이야

희봉

2013.11.06 23:11:14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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