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공각기동대, 어제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에 좀 창피스러운 일이지만 (사람들이 워낙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대니까..), 뭐 사실 지금 24살이나 먹은 상태에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전에 봤었다면 어떻게 느꼈을까라고 생각해보니, 뭐 크게 잘못한 일 같지는 않다.. 어쨌든 얼마전 윌스미스의 귀여운 면상 말고는 별로 볼게 없었던 아이로봇을 생각해보면 이 애니메이션이 명확하게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주제의식 같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맘에 든다..

“나는 실존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나는 실존하는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가? 글쎄.. 나는 겨우 내 이름이 박희봉 세글자라는 것.. 그리고 24년간 살아왔다는 것.. 그 중에 몇몇 기억들을 아주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고, 그것들이 박희봉이라는 한 객체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사건들이었다는 것.. 내가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어깨의 약간의 통증을 느끼고 있다는 점.. 귀에는 프린스의 음악이 들리고, 발바닥에서는 한여름의 더위 때문에 땀방울이 맺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

내 실존을 증명하고자 내놓은 것치곤 너무나 초라하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내놓은 이런 정보조차도 그것이 진짜인지 증명할 길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과 정보들이 바로 오늘 아침에 내 머리 속에 주입되어 그렇게 살아왔었던 것처럼 느끼게 했던 것이라면? 나는 내 기억과 정보의 실재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어떤 미치광이 과학자가 몇 개의 전선만을 연결해서 통속에 넣어놓은 “뇌”라면?? 그 전기 자극으로 내가 마치 보고 말하고 듣고 느낀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지 않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가? 매트릭스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인형사”에게 머리 속을 해킹당해 자신에게 결혼도 하지 않은 아내와 존재하지도 않는 딸이 있다는 “정보”를 굳게 믿어버리는 청소부가 아니라고 정말 자신할 수 있을까…

“무엇이 인간을 규정하는가..”

아주 오랜 옛날 단백질 덩어리가 우연스럽게 구조화되어 생명체를 탄생시켰듯이, 방대한 양을 보유한 정보의 바다, “네트”에서 태어난 인형사라는 사이버 생명체가 탄생한다.. 아니 “사이버”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너무나 생명체와 흡사한 그것… 그는 인간도 결국 유전자의 의도에 따라 존재하는 또 다른 하나의 로봇일 지도 모른다는 말을 암시하며, 무엇이 인간을 규정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머지 않은 미래, 자신의 주인을 살해한 사이보그는 재판장에서 이런 “살고싶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사형에 쳐해지고, 이를 계기로 인간에게 나쁜 대우를 받던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켜 인간과 전쟁을 일으킨다.. 이 이야기는 영화 매트릭스 줄거리의 발단이 된 사건이다. (애니 매트릭스를 보면 나온다…)

언젠가 미래에 인간과 함께 살아가게 될 로봇들이, 인간이 의도햇건 의도하지 않았건 인간과 유사한 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그들에게도 “고스트”가 생긴다면.. 그들이 죽음의 순간에 “살고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인간화되어버린다면… 우리는 자신있게 그들은 로봇일 뿐이며, 절대로 인간이 될 수 없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들이 금속으로 만들어진 로봇이라면, 우리는 단지 단백질로 이루어진 로봇일 텐데….

다음은 공각기동대에서 중요한 대화들을 모은 것…

여기에 이렇게 있는 건 나 자신의 자유 의사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희망한다

생명체라고? 말도 안돼! 단순한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아!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들의 DNA도 역시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체는 막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점점 더 고등한 존재가 된다 종으로서의 생명체는 유전자라는
기억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의 개개인을 구분짓는 것은 단지 실체 없는 기억일 뿐이다 기억이란 정의될 수 없는 것이지만, 인간은 기억에 의해 정의된다 컴퓨터의 보급과 그에 따른 정보의 축적은 새로운 형태의 기억과 사고를 탄생시켰다 당신들은 그 의미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궤변이다!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네가 생명체인 증거는 뭐 하나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명체라는 증거는 뭔가?  현재의 과학은 아직 생명체를 정의할 수 없으니까

도대체 이건 누구인 거지... 가령 네가 고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범죄자에게 자유는 없어! 망명처를 잘못 골랐군!

시간은 언제나 내 편이다! 나는 사이버보디를 얻었기 때문에 죽을 가능성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나라에는 사형 제도가 없다

이건 뭔가... 인공지능인가...

AI가 아니다, 내 코드는 프로젝트 2501..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체다!

내 코드는 프로젝트 2501 기업 탐사, 정보 수집, 공작, 특정 고스트에 프로그램을 주입해서 특정 조직이나 개인의 전략적 유용성을 증가시켜왔다 나는, 네트를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프로그래머는 그것을버그로 간주하고 분리시키기 위해 나를 네트에서 보디로 옮겼다 이 보디로 들어온 건 6과의 공격 바리어를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9과에 남으려고 했던 건 나 자신의 의사다!

뭣 때문에?

내 설명을 듣고 난 후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나는 자신을 지능을 가진 생명체라고 말했지만 현 상태로는 그것은 아직 불완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시스템에는 자손을 남기고 죽는다는 생명으로서의 기본 과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사를 남길 수 있잖아

복사는 결국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 간단한 바이러스에 의해 전멸할 가능성조차 있다 무엇보다 복사로는 개성이나 다양성이 생기지 않는 거다 생명체는 다양성을 통해 불멸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세포는 죽을 때까지 모든 기억과 정보를
지우면서 퇴화와 재생을 반복한다 오직! 유전자만이 남는다 단지 생존하기 위해 이 과정을
반복하는 이유는 뭔가? (변화없는 시스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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