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아침 6시 50분 알림 소리가 들리자 퀸사이즈 침대 한쪽 구석에서 그가 눈을 뜬다.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핸드폰의 액정을 슬라이드하여 알람을 끈다

그리고 7시 1분에 다시 알람이 울린다. 왜 7시가 아닌 7시 1분에 알람을 설정해놓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른 알람과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과거의 자신을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미 이해하지 못할 그 7시 1분의 취침시간을 고수하기로 했다.

이때 일어나지 못하면 7시 21분에 일어나야 한다. 7시 21분에 일어나면 머리를 만질 시간이 없다. 그러면 하루종일 엉망인 기분으로 돌아다녀야 하겠지. 그래서 7시 10분이 채 되기전 작고 가벼운 몸을 껑충 일으킨다

그는 항상 침대에서 일어날 때의 기분을 알아내려고 애썼다. 오늘은 견딜 수 있는 날인지 궁금해서였다. 5년전 살기 싫을 정도로 괴롭고 쓸쓸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매일 아침 작은 집의 작은 침대에서 눈을 떴을때 작은 옷장에서 꺼내입은 "수선된 수트"만이 그를 위로하던 그 때. 항상 그때와 비교하여 볼때 더 넓은 집과 넓은 침대, 그리고 몇명의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기려고 했다.

몸을 화장실로 던져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를 곱게 가르마를 낸다음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다듬는다. 그리고 아침에 먹으려고 사놓았던 시리얼, 빵, 샐러드, 홍삼액기스를 모두 제꺼두고 황망히 집을 나선다.

7시 50분

차를 타자마자 핸드폰을 매만지면서 어떤 음악을 들을까 고심한다. 그곳엔 이미 수십번 더 들었을 수많은 곡들이 (특히 수천번은 더 들었을 프린스의 곡들)이 있다. 그럼에도 그는 더이상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이미 박제가 되어버린 사람처럼 매일 같은 옷(가끔은 너무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격이 바뀌면 수선된 옷을 입지 못할 까 걱정을 하곤 했다)을 입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같은 길을 운전하여 회사를 간다. 그가 자주 바꾸는 것은 오직 회사 뿐인데 이미 5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가 운전을 시작한 것은 불과 3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는 본래 운전을 두려워했다. 분명 운전을 하다가 개죽음을 당하지 않을까 겁을 먹었기 때문인데 강제로 차가 주어지자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자동차가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집의 연장"이 된 것이다. 게다가 자를 몰고다니면서 체력 또한 아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의 차를 진정 아꼈다.

그에게 처음 주어진 건 10년된 옥색의 자동차였다. 그는 그 자동차로부터 얻을 수 있는 효용(즉 개인공간의 연장과 기동력)에 만족함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자동차를 사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이 보기에 고물같아 보이는 이 자동차를 몰고다닌다는 사실을 되려 재밌는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가 돈을 많이 벌고 비싼 옷을 입는 사람이 되더라도 이 차를 버리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경쟁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했다. 고등학교 때 암기했던 수학 공식이나 물리 공식처럼 몇가지 공식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헤치려고 하다가 이젠 더이상 문제를 풀지 않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처럼... 게다가 그는 매우 똑똑했기 때문에 주어진 어떤 상황에 대한 자기합리화에도 능했으며 특히 자신에 대한 기만술에 탁월했다.

다행인 것은 그의 취향이 그닥 까다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별히 아주 어글리한 것이 아니면 그는 대체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에 어글리한 것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날카로움을 잃어가고 풍화를 겪어가면서도 어글리한 것이 더 많이 보이자 그는 어글리한 것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한 몇가지 룰을 세웠다.

첫째. 바지가 구두를 반이상 덮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지 말 것
둘째. 무례하며 땀을 많이 흘리는 자에게 가까이 가지 말 것
셋째. 나외의 사람을 경계할 것
넷째. 여행을 하지 않을 것

사실 그에게 자신의 집과 자동차를 영점으로 하여 그 어떤 XYZ축 공간이동도 여행으로 간주된다. 마트에 가는 것도, 출근을 하는 것도 그리고 누군가와 약속을 위해 어떤 장소로 이동하는 것도 모두 여행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이 모든 여행으로부터 돌아와 성스러운 집으로 안착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모든 오감은 집과 자동차와 동기화가 되어있으며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의 총명함은 반감되어버리고 만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무(기)력함을 "실존주의자"라는 단어로 치환하기를 좋아했다. 실제로 "실존주의자"라는 단어가 가진 뜻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약점을 그럴싸한 단어(무려 다섯글자이지 않은가!)로 포장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그 단어는 그녀가 그를 옹호해주기 위해서 붙여준 단어이기에 그는 그 단어를 소중히 하기로했다. 그 여자는 그에게 자신이 아끼는 책을 선물로 준다고 약속하였지만 끝내 지키지 않았다.


... 투티컨티뉴드 없음...

희봉

2015.07.29 18:01:27

방명록에 JOY님이 박희봉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신다고 하셔서 선수를 뺏길 수 없으니 나도 박희봉이라는 소설을 써보았다. 물론 여기 나온 내용과 나는 완전 180도 정반대다

희봉

2015.07.30 00:06:39

“소설 박희봉”을 집필하며 느낀 것

어떤 형태의 글이든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강렬히 느낀 것 (희봉닷컴을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 하지만 그 욕구만큼 쓰지 말아야 하겠다고 (본능적으로) 느낀 것은 본래 글이란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희봉닷컴의 모든 글을 “51%의 거짓말과 49%의 농담”으로 채우려고 노력중이다.

왜냐면 나는 항상 슬프고 이기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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