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혼자 된다는 것, 그 두려움"

영화의 제목이 노골적으로 의미하는 그것... 혼자인 남자... 혼자인 것.. 더 이상 누군가와 교감할 수 없다는 그 절망감... 주인공은 16년간 사귀었던 자신의 동성애인을 교통사고로 잃자 체념하고 자살을 결심한다. 더욱이 그는 60년대 미국을 살고 있다.

하지만, 죽음을 결심한 그날 또한 그가 생략할 수 없는 것은, 가지런한 머리, 검은 뿔테, 꼭 맞는 수트, 적당히 윤기가 흐르는 옥스포드 블랙 슈즈, 블랙 슬림 타이, 타이바... 그리고 포켓스퀘어까지. 절망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언제나 처럼 완벽하게 자신을 위장한다.

이처럼 영화 속 톰포드의 환타지는 한치의 오차조차 없다..




"사랑은 버스와 같데요, 잠시 기다리면 다음 차가 도착한다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지만, 어떤 것들은 평소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감독은 슬로우 모션, 과감한 클로즈업, 강렬한 비비드 컬러를 통해서 주인공의 심경을 표현하는데, 이 순간은 매우 관능적이고 육감적이어서 마치 하나의 패션 캠페인을 보는 것같다. (마치 톰포드의 그것!!)

그리고 마침내 그의 앞에 나타난 한 미소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논리적이며 매우 시니컬하기 까지한 주인공은 알듯 말듯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이 소년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기로 마음먹은 것같다. 아니 어쩌면 더 적극적으로...

늦은 밤 난로가에서 맥주를 마시는 주인공과 소년,, 시계를 바라보는 주인공에게 소년은 말한다.

"제가 집에 가길 원하시나요?"
"농담해? 가서 맥주나 더 가져와.."

익살스럽고 능청맞은 대답과 함께 미소짓는 콜린퍼스의 연기는 정말 아들뻘인 니콜라스 홀트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마져 불러일으킬 만큼 섬세하다. 입안 가득 머금은 그의 행복한 감정... 그는 분명히 하루 전에 마음먹은 자살 계획을 철회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또다른 사랑을 걷어차면서까지 자신이 세웠던 자살계획을 옮길만큼 어리석지는 않으니까.(그는 "우리 수영하러 갈까요?"라는 말도 안되는 그 소년의 제안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그는 나이 먹었으나 멍청해지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16년 동안 그와 함께 살았던 옛 애인처럼 아침에 벌떡 일어나 웃으며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테니까.. 예전엔 그런 것들은 바보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을 때려주고 싶을 만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말이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 미소를 지을 수 없는 처지..."

무엇보다 이 영화가 나를 강렬하게 끌었던 가장 큰 힘은 영화 초반이었다. 악몽을 꾸고 아침을 맞이하며, 언제나 처럼 곤란에 처한 자기 자신을 위장하면서 보내야하는 가장 힘든 시간...

"지난 8개월 동안 기상은 정말 힘들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음을 냉담히 깨닫는다. 본래 기상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니 분명히...

영화의 주인공처럼 나도 곤경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알람 시계를 몇십번이나 다시 맞추면서 1분 2분을 더 회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뒹굴거리다가 결국 일어나 씻고, 전신거울 앞에서 나의 모습을 위장한다. 마치 곤경에 처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물론 내 인생을 끝내야 겠다고 생각할 만큼 내 자신이 곤경에 처해있다고 생각하진 않다. 하지만 지난 6개월간 내 삶, 30대의 시작은 행복함, 만족같은 감정들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를 보는 2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톰포드(이 영화의 감독, 과거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는 나에게 완벽한 환타지를 선사했다. 잠시나마 주인공에 몰입하여, 그가 느꼈을 절망과 행복, 기대감에 내 자신을 이입할 수 있었다. 주인공의 입가에 수줍게 머금은 행복감은 스크린을 넘어 잠시나마 나에게 전이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스크린을 벗어나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달라진 것은 없다.. 새벽 12시 반이 넘었지만 나는 잠들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대로 새벽이 밝아오지 않은채로 그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에 무겁게 몸을 일으킨 후, 내 몸에 꼭 맞는 수트를 챙겨입고 둥근 코가 예쁜 구두를 신을때쯤, 5초 정도의 만족감... 그것이 현재 내가 가질 수 있는 전부다.






트리비아1. 콜린퍼스와 줄리엔무어가 어색한 커플댄스를 추고나서 거실 바닥에 드러눕는 순간... 자켓이 구겨지지 않게 여미는 장면... 오늘 당장 죽을 사람이 자기 자켓은 끔찍히도 생각한다는 지극히 된장스러운 리얼리즘에 탄복!!! 나 말고 캐치한 사람이 있엇을까;;;

트리비아2. 영화속 콜린퍼스가 착용한 안경이 너무 맘에 들어서 여기저기서 알아봤더니 영화를 위해서 톰포드가 특별히 제작한 것이라고.. 쳇... 그런 비슷한 안경을 찾아보려고 남대문을 이잡듯이 수색하였으나 찾지 못함.. (그나마 데릭램하고 필립램이 만든 안경이 비슷한 때깔을 연출함.. 비싸서 못사고 그냥 나옴 -_-) 한가지 느낀점... 우리나라에서 뿔테 좀 쓴다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톰포드 안경을 쓰고있다는 점.. 그리고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안어울린다는 것.. (못생긴 얼굴 가리기용으로만 좋은듯..)

트리비아3. 영화에서 가장 그럴싸한 대사로는 "추한 것들조차 자신들만의 아름다움이 있죠"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에 편의점앞에서 우연히 만난 모델지망생(또는 지골로)에게서 들은 말인데, 동성애자를 추한 것으로 매도하는 당시 편견에 대한 작가(또는 톰포드)의 항변이 아닐까...

트리비아4. 주인공이 과거 옛애인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나온 촌철살인의 대사...

남자1 - 너 지금 질투하는거니? 넌 여자랑 자본적 없어?
남자2 - 응.. 난 여자랑 자본적 없어
남자1 - 여자랑 자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수 있었지?
남자2 - 그냥 난 확신할수 있었어.
남자1 - "넌 정말 모던하구나!"



당신은 얼마나 모던한가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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