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1. STEP BY STEP - NKOTB

나는 음악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 내가 무언가 좋아한 것중에서 제일 오랫동안 좋아한 것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에 내가 기억나는건, 김현식 노래를 아주 짧게나마 좋아했었다는 것.. 그리고 누나들의 영향으로 뉴키즈온더블럭을 접한 후, 나는 팝음악으로 빠져들었다.

월요일 저녁 7시 KBS2에서 해주던 지구촌영상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보고 녹화까지 해뒀다. 1회 첫번째 뮤직비디오는 당연 최고의 인기곡 스탭바이스탭이었고, 2번째 곡은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않는 Tommy Page였다. (당시엔 꾀 인기가 많았다. MC중 누군가 토미 "쪽"이라는 썰렁한 농담을 던진 것까지도 난 기억한다)

2. MIRACLE - QUEEN

MC가 어떤 뮤직비디오 한편을 소개하면서 말했다. 이 그룹의 보컬은 얼마전 사망했다고.. 오페라같은 피아노 선율과 함께 콧수염을 붙인 어린아이의 립싱크가 시작되고, 그 곡을 처음으로 나는 QUEEN에 빠져들었다. 그 후 차근차근 카셋트 테잎을 사모으며 "공식적이고 대외적으로 QUEEN 빠돌이" 짓을 시작했다. (따라서 나는 그 당시 거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서태지의 열기에 시큰둥했던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았다)

당시는 카셋트 테잎의 시대였다. 난 아직도 누나들의 팝컬렉션들을 기억한다. 보이즈투멘, 휘트니휴스텐, 머라이어캐리.. 당대(90년대 초중반) 팝음악계를 활약했던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누나들 방에는 가요, 팝을 가리지 않고 셀수없을 정도로 많은 카셋트 테잎이 즐비했다.

카셋트 테잎의 낭만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니, 영원하기는 커녕 카셋트는 혹사에 약했다. 일명 "늘어나도록 듣는다"라는 것이다. 반복해서 듣다보면 음질이 나빠지기 일쑤였다. 좋아하는 테잎을 아껴서 들어야 한다는 점. 테잎 시대의 음악은 그토록 소중했다.

그렇게 5,6학년 그리고 중학교 1~2년간 퀸을 들었다. 그때 내가 모아두었던 거의 전집에 가까운 퀸 테잎과 시디는 지금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다. 기억나는건, 프린스에 대한 사랑이 절정이었던 고3시절 ROCK덕후 친구 녀석에게 레니크라비츠 시디 한장에 내 퀸 시디 2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3. WHEN DOVES CRY - PRINCE

티비가 유일한 선진문물을 소개시켜주었던 막강한 파워를 가지던 시절... 1년에 한번씩 그래미시상식이나 아메리칸뮤직어워드 시상식을 공중파에서 보여주던 그 때... 우연히 프린스라는 가수를 접했다. 사실 시상식의 프린스 모습을 보고 나서 제일 처음으로 그의 테잎을 산 것은 거의 1년이 지난 후 였다. 내가 고른 것도 아니고, 서점에 가는 큰누나에게 "프린스 테잎을 아무거나 하나만 사오라"고 부탁한 후 누나가 골라온 것은 HIT 2였다. 따라서 내가 정식으로 제대로 처음 접한 프린스 곡은 도대체 내가 이제껏 알고 있는 노래의 기본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은 Controversy였고, 나는 그것이 거의 instrumental에 까깝다고 느꼈다.

괴이한 곡(대표적으로는 if i was your girlfriend)들로 잔뜩 채워진 HIT2 테잎을 다 떼고나서 HIT 1을 구입하고는 본격적으로 PRINCE 빠돌이 생활을 시작하고야 만다. 내가 어떤 결정적인 계기로 프린스에 빠져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결정타는 분명히 When Doves Cry였다. 가슴을 쿵쾅거리는, 반복적인 드럼비트와 나즈막히 중얼거리는 후렴구에 나는 완전히 중독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몇개의 프린스 테잎을 더 모았다

4. 소니 시디플레이어 777과 기숙사 생활

내가 중3이 되던 그 즈음에 우리집은 CD 플레이어가 장착된 스테레오를 장만했다. 시디를 구입해야 겠다고 큰 맘먹고 간 시내의 음반가게의 주인아저씨에게 프린스 CD를 구입하겠노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그는 우쭐거리며 시디 한장을 내밀었고, 그것은 퍼플레인이었다. 트랙 리스트를 보고서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When Doves Cry, Let's Go Crazy, Purple Rain.. 어떻게 이 곡들이 한 장의 시디 속에.. 그리고 내가 들어보지 못했던 나머지 곡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득안고 스테레오 앞에 앉아서 한트렉 한트렉(Take Me With U, Beautiful Ones, Computer Blue, Darling Nikki를 처음 들었을때의 그 흥분) 들었을때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착실하게 공부 열심히 해서 경기과학고에 합격하고 나서, 기숙사로 떠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한턱을 크게 쏘셨다. 당시의 모든 휴대용 시디플레이어를 배불뚝이 두꺼비처럼 불룩하게 못생기게 만들어버린 다크 블루 칼라의 얇은 소니-777 시디플레이어...

경기과학고 기숙사 자습실의 내 자리에는 프린스와 퀸의 시디들이 약 6:4의 비율로 빼곡히 쌓여있었다. 6시 반에 기상하여 12시까지 공부만 하던 공부기계들에게 음악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많은 아이들이 음악에 몰입했고, 당시 내 또래들의 대세는 메탈리카, 드림씨어터, 그리고 건즈앤로지스였다. QUEEN을 듣는 것으로도 괴이한 아이 취급당하는 내게 PRINCE는 나를 더더욱 기이한 이미지를 덧붙여 주었다. (사실 기억해보자면 나는 자습실에서 Uptown이나 Dirty Mind, When U're Mine같은 뉴웨이브 디스코 곡에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흥얼거리곤 했었던 것같다)

공부잘하는 과학고에도 손버릇이 안좋은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 녀석(들?!) 중 일부는 음악을 좋아해서 CD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때 나의 몇몇 마이클잭슨, 퀸, 메탈리카, 서태지 시디가 도둑맞았고 유일하게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아티스트는 프린스가 유일했다. (늦었지만 고마워! 프린스 시디를 안가져가줘서!)

그리고, 그 무렵 이 세상엔 "인터넷"이라는 것이 창조되었다

5.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인터넷이 생기고 나서도 음악을 듣는 주요 기기는 단연 CD플레이어였다. 나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침에 학교가기 전에 오늘 하루동안 들을 시디를 고르기 위해 부산을 떨었던 것을... 비록 CD가 프린스 전집밖에 남아있지 않았으나 언제나 시디를 고르고, 버스에 올라타고 나면 항상 챙겨오지 않은 시디가 머리속을 맴돌았다. 등교 전 어떤 시디를 챙길까, 취침 전 어떤 시디를 들으면서 잘까 하는 고민들...

그리고 mp3를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인터넷 역사상 최초의 프로그램.. "냅스터"가 2000년도 후반 탄생한다. 냅스터를 통해 나는 그 동안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었다. 과거 내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루트는 누나들의 소개, 지구촌영상음악, 공중파에서 해주던 시상식, 기숙사 친구들의 소개 뿐이었지만 이제 내가 직접 음악을 찾으며 돌아다녔다.

혁신적이지만 불법적인 프로그램이라 오래가지 못했던 냅스터 이후, 비슷한 부류의 mp3 공유프로그램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오디오갤럭시, winmx라는 프로그램을 썼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나의 (흑인)음악에 대한 storage가 무한대로 확장되어갔다. 이 무렵 딴지일보에 "훵크음악을디벼주마"라는 10부작 글을 연재하면서 나는 흑인음악에 대한 맹목적이고 교조적인 색채까지 덧 씌워지게 된다.

디안젤로, 맥스웰, 마빈게이, 커티스메이필드, 제임스브라운, 어쓰윈드앤화이어, 슬라이앤더패밀리스톤 등 Old School / Neo Soul 가리지 않고 힙합을 제외한 흑인 명곡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족으로 말해두자면 이 무렵이 내 인생에서 QUEEN을 제일 멀리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6. 핑크색 iPod Mini의 구입

스물네살이 되던 해 나는 내 인생 처음 mp3플레이어를 구입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자연스레 Apple의 iPod에 꽂혔고 그 이후 쭈욱 Apple iPod를 시리즈별로 구입하고 있다.) 그렇게 15살부터 시작한 나의 CD 인생은 끝났다. (현재까지도..) 그리고 앨범 단위 감상도 종지부를 찍게 된다. mp3플레이어가 내 모든 음악을 다 담지 못했으므로 처음에는 그 날 들을 CD를 고르는 고민과 비슷하 고민을 하곤 했다. iPod에 있는 노래를 다 지우고, 다른 노래를 채워넣는 작업... 그러다보니 불가피 하게 Album단위가 아닌 곡 단위 선곡이 자리 잡았던 것이다.

한손가락만으로 손쉽게 작용햇던 iPod의 휠은 더 끔찍했다. (악마가 설계한 듯 싶었다. 어찌 이토록 편리한가) CD단위로 들을때의 감상 자세는 이미 폐기처분되어버리고, 나는 한곡을 진득히 듣지 못하고 계속 Next Song버튼을 눌러댔다. 거기에다가 어떤 앨범을 들을지 고를 필요가 없는 "전곡 임의 재생" 버튼...

이곳에서도 몇번이나 썼지만, "전곡 임의 재생"은 정말 악마와도 같은 기능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모든 곡을 셔플로 돌려놓고는 땡기지 않는 곡이 나올때면 어김없이 "다음곡"버튼을 눌러댔다. 내가 맘에 드는 곡이 나올때까지 수십번을 연달아 눌러 댈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와 발맞추어 토렌토를 비롯하여 인터넷에서 mp3를 구할 수 있는 길이 무한대로 열리자 나의 mp3 폴더는 브레이크없는 확장을 계속했다. 내가 다운로드한 것을 차마 다 듣지도 못한 상태에서 계속 새로운 노래들을 다운로드 하였고 그것들은 iPod에 꾸겨넣어졌으며 2만곡 가까운 Song List에서 셔플재생으로 정말 "운좋게" 살아남아야 내 귀에서 들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시중에 있는 그 어떤 mp3기기도 내 mp3들을 한번에 담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iPhone을 구입하게 되면서 나의 음악 플레이어는 iPhone으로 넘어오게 된다.

7. Back To Black - Amy Winehouse

스마트기기는 편리함을 주지만 동시에 허무함을 안겨준다. 언제어디서나 내가 가진 모든 mp3를 들을 수 있게 만들었지만 덕분에 나는 내 모든 mp3들로부터 파뭍혀버렸다. 다시금 내가 퍼플레인 시디를 사가지고 집에 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스테레오 앞에 앉아 경견하게 맞이 하던 그 음악에 대한 경외감을... 더 이상 스마트기기로부터는 얻을 수 없다.

내 iPhone에서 당장 2만곡을 불러낼 수 있지만 나는 음악을 들으러 LP Bar로 향햇다. 그곳에서 DJ에게 조심스럽게 쓴 나의 신청곡을 건내주고 진토닉 한잔을 말아먹으며 같이간 친구와 함께 그 노래가 끝날때까지 그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지지직거리는 오래된 LP소리마져도 그립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LP 플레이어를 구입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기회가 될때마다 LP를 사모으곤 했다. mp3의 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 CD에 대한 미련은 이미 없었지만, 음악을 담아내는 유형의 그 무언가에 대한 집착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CD는 너무나 차가웠다. 나는 무언가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따뜻한 것을 가지고 싶었다. 반면 LP는 너무 아름다웠다. CD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ARTWORK를 보고있노라면 명반이 가진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예술체를 10센치 남짓한 크기로 줄여놓은 플라스틱 케이스는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난 LP 플레이어도 없는 상태로 LP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LP플레이어를 구입하고 그 LP들을 회전판 위에 올려놓았을때 그 감동은 정확히 내가 15년전 퍼플레인 시디를 스테레오에 넣어놓고 그 앞에 쭈구리고 앉아 감상했던 그 때를 생각나게 했다. 너무나도 편리한 스마트기기와 달리 LP플레이어는 너무나도 나를 귀찮게 한다. 30분 남짓 돌아가고 나면 어느새 다른 면으로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드디어 다시 예전처럼 음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시간을 내서"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닌...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감상"의 시간으로써 말이다.

나는 요즘 "내가 언제 행복한가"에 대한 답을 찾고있다. 그리고 그 중 분명한 한가지를 느끼고 있다. "좋은 음악을 LP위에 올려놓고 감상할때의 그 느낌..." 이것은 분명 행복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중한 순간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

희봉

2011.12.20 00:35:30

with you.. somewhere here on earth...
List of Articles
공지 [기록] 인간 박희봉에 대한 짤막한 소개... [1] 희봉 2013-08-07 43832
공지 [목록] 갖고 싶은 것들 [20] 희봉 2015-06-26 36418
공지 [링크] 몇몇 장문의 일기 들.. 희봉 2014-01-28 28535
» 나는 음악을 "어떻게" 즐기는가 [부제: mp3우울증] [1] 희봉 2011-12-17 3221
1040 난 위험한 사람이라니깐... 희봉 2011-12-10 1848
1039 내가 정말 개인가.. [4] 희봉 2011-12-07 1799
1038 내가 종편을 세운다면, 편성표! [2] 희봉 2011-12-02 2562
1037 in my place... (부제: good bye my ol' place) [2] 희봉 2011-11-26 1738
1036 나는 언제 행복한가 [2] 희봉 2011-11-20 2487
1035 나는 왜 공부했을까... [1] 희봉 2011-11-08 1913
1034 11월에 열심히 이사 준비중! [1] 희봉 2011-11-06 1766
1033 항상 Plan B가 있어야해... [2] 희봉 2011-10-27 1740
1032 내가 선거에 나가서 네거티브를 당한다면? [1] 희봉 2011-10-24 1678
1031 비밀 결사 클럽... [5] 희봉 2011-10-19 1832
1030 울적함을 날리는 두가지 방법 [1] 희봉 2011-10-07 1890
1029 내가 희봉닷컴을 운영하는 이유 중 하나는... [1] 희봉 2011-10-03 1933
1028 아리송해... [1] 희봉 2011-09-29 2004
1027 다림질보다 더 값진 것들.. 희봉 2011-09-28 1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