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홍대 근처를 갈때마다 내가 제일 자주가는 Bar가 있다. 이름은 "Under the cherry moon" 즉, "체리빛 달 아래서"이다. 위치는 상수역에서 극동방송쪽으로 3분 정도 걸어가면 골목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마 상수역 근처를 어지간히 지나다니지 않았다면 쉽게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 Bar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무엇보다 음악이다.

한쪽 벽면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는 LP들과 CD들… 빌리할리데이부터 에이미와인하우스까지, 비틀즈, 레드제플린, 데이빗보위, 밥딜런.. 그리고 레너드코헨과 조니미첼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물론 마빈게이와 스티비원더 역시 빠질 수 없고 내가 이 Bar를 찾아가면 주인장은 나를 반기듯이 아래 세곡을 꼭 틀어준다

Joni Mitchell - A Case Of You
Leonard Cohen - Famous Blue Raincoat
Prince - Sometimes It Snows in April

물론 신청곡도 받아준다. 물론 이 술집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선택은 언제나 진토닉이고 봄베이 사파이어 블루 드라이진에 레몬을 살짝 뿌린 그 맛이 음악과 함께 믹스된다.

음악의 볼륨은 너무 크지 않아 함께 온 사람들과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고, 너무 작지도 않아 숨죽이지 않아도 그 멜로디를 충분히 식별할 수 있다.

2. 그리고 음악감상에 방해되지 않는 적은 인원의 (거슬리지 않는) 손님들..

1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바, 그리고 5~6개의 테이블… 하지만 손님은 언제나 5~6명을 넘지 않아 시끄럽지 않다. 그리고 이 손님들의 신청곡또한 내 신경을 거스르게 하지 않는다. 내가 레너드코헨과 조니미첼을 신청할때 이들은 밥딜런과 비틀즈를 신청한다. 하지만 서로에게 조금의 관심을 표명하거나 하지 않는다. 단지 음악과 술을 즐기기위한 쿨한 사람들일 뿐...

따라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뿐만 아니고, 좋은 음악을 얻어가기까지 한다. 얼마전 그곳에서 밥딜런의 "One More Cup Of Coffee"라는 곡을 처음 들었는데 대번에 그곡이 명곡임을 직감했고 그 곡은 내 Favorite이 되었다.

아무도 뮤즈, 콜드플레이, 제이슨므라지, 존메이어, 펫메스니 등을 신청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 bar에서 허용되는 가장 젊은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아티스트는 엘리엇 스미스일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인테리어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LP외에도 다른 벽면은 온통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포스터들과 사진들로 채워져있다. 그리고 진열장에는 예쁜 병모양의 술들이 가득하다.

조명은 너무 어둡지 않은채 은은한 노란 조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부분조명이 비추고 있다. 한쪽 벽면에는 놀랍게도 벽난로가 있는데 겨울이 되면 이곳에서 불을 떼준다. 벽난로 근처의 자리는 손님이 별로 없는 이 Bar에서 가장 인기있는 자리임에 틀림없다. 오래된 LP가 돌아가는 "지지직" 소리와 나무 뗄감들이 연소되면서 나는 "딱딱" 소리가 어울어진다.

하지만 겨울이 아닐때에도 이 술집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그것은 아마 야외 테라스일 것이다. 어느 정도 날씨가 포근해지면 테라스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실 수 있다. 조금 외진 골목에 위치하다보니 야외에 있어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고 조용하다.

4. 그런데 이제는

명민하고 냉정한 사람이라면 이미 간파했을 무언가를 밝힐때가 되었다. "체리빛 달 아래서"같은 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홍대근처에 벽난로가 있는 Bar가 있다고 했을때 당신은 그것을 진정으로 믿었는가!? 그리고 under the cherry moon은 프린스 노래 제목이잖아!) 내가 위에서 설명한 내 이상적인 Bar의 장점을 한개 정도 갖춘 곳은 몇군데 있긴 하겠지만 이 모두를 갖춘 곳은 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 밝혀둘 점은 이렇게 자신의 이상형의 Bar에 대해서 글을 쓴 이유는 조지오웰의 "물속의 달 (the moon under water)"이라는 수필에 대한 오마쥬이고, 이 수필 역시 이 글과 똑같은 형식으로 조지오웰의 이상적인 펍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그런 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만 낚일 수 없다"라는 생각에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이다.

5. 하지만 당장은 아닐지라도

혹시 모르잖아.. 언젠가 내가 그런 Bar를 차리게 될지.. 그런데 조지오웰의 저 수필덕분에 영국에서는 "물속의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술집이 수백개가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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