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지산락페스티벌 27일 후기

어느덧 우리나라에서 가장 메인급 락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한 지산 벨리 락 페스티벌.. 이곳에 처음 가봤다. 그러고보니 지산은 커녕 락페스티벌에 처음인 것같다. 원래 정통_백인_락음악 (물론 정통백인락이라는 어휘 자체가 조금 어폐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아무튼..)을 잘 안듣는데다가, 시끄럽고 사람많은 곳을 싫어하는 까닭에 락공연장을 거의 가지 않는다.

그런데 라디오헤드가 온다고 해서 갈까말까 고민을 했는데, 얼마전 코첼라 락페스티벌에서의 라디오헤드 공연 장면을 보니까 톰요크의 접신(흡사 무당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한 듯한 퍼포먼스를 보면서 "얘는 그냥 가수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호불호와 상관없이 무조건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공연 하루 전 yes24에서 27일 1일권을 구입했다. (가격: 14만원)

1. 오후 1시 30분 - 출발

"상무님, 저 라디오헤드 공연 보러 갈테니까 알아서하세요"
"응? 라디오헤드가 뭐야?"
"유 퍼킹 스페셜! 아임 어 크립.. 이거 몰라여?"
"너 해고!"

물론 이런건 아니고, 반차(하루중 절반만 휴가내는 것, 마치 닭 반마리만 시켜 먹는 것처럼..)를 내고 오후 1시 반에 사무실을 나왔다. 양재에서 동행을 태우고 이천으로 향했다. 양재에서 동행을 태운 시각이 약 2시 반...

2. 오후 4시 - 지랄의 조짐 begins...

걱정과 달리, 이천까지 가는 길은 그닥 막히지 않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선글라스끼고 피서가는 기분으로 파워 드라이브! (라디오헤드의 우울한 음악과 함께!)

그런데 이천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1km정도 남겨두고 정말 길고 긴 차량행렬을 본 순간… 무언가 언제 어디서 오늘 빅엿을 하나 먹을 것같은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세상에나 난 그렇게 진입로에 차량행렬이 긴 건 첨봤어. 어린이날이 10년에 한번씩 찾아오고 에버랜드가 공짜로 문을 열어도 그만큼 오지는 않을거야..)

어쨌든 공연장을 3키로 남기고 1차선 도로에 들어섰는데, 지인으로부터 공영주차장이 만차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응? 이것들이 지금 주차장을 빵빵하게 마련해놓지 않았다고?

내가 너무 순진했나보다. 난 당연히 공연장 바로 옆에 허허벌판이 크게 마련되어있고 여유롭게 주차를 할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주차장은 실제 공연장보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는 것 처럼 들렸다.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공연장에 가야한다니.. 뭐 이런…

무대포로 공연장 위치만 네비에 입력하고 갔던터라 공영주차장까지 다시 찾아가는 게 너무 귀찮아서 그냥 집입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올라갔다. 아 난 몰라. 그냥 올라가다보면 뭔가 방법이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그리고 차량통제지점 바로 앞에 있는 사설주차장에 유료로 차를 댔다. (그냥 할수없어서 선택한 것인데 이게 나름 좋은 선택이었음)

그렇게 차를 대고 10분을 걸어서 공연장 입구로 향했다.

2. 오후 6시 - 티머니 제국의 역습

내 마초적인 성향에 꼭 맞는 핑크색 팔찌를 왼쪽 손목에 차고 락페 입장. 처음 살짝 업된 나머지 기념품 가게로 직행. 기타피크, 버튼, 티쳐스, 수건 등등이 있었으나 하나같이 구려서 그냥 수건이나 사려고 결제를 하려는 순간

"손님, 이건 티머니로밖에 결제가 안되요"
"그럼 이거 현대카드로 할게요, 교통카드 기능도 있으니까.."
"아 그게, 선불 티머니만 가능해요.."
"아 됐어요, 그럼 현금으로 살게요"
"현금도 안되요, 티머니만 되요"

으앜! 이게 뭐시냐!! 이게 무슨 티머니의 역습이람!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오른쪽을 보니, 티머니충전을 위한 수십미터짜리 줄이 3~4개. 음식, 음료수 다 못 가지고 들어오게 해놓고, 결제수단을 일원화 시켜버리다니… 그리고 내 지갑속에 들어있는 만원짜리 몇장과 신용카드가 이 곳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화폐는 교환가치로만 의미가 있을 뿐…" 이라는 교훈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돈이 돈 그 자체로써의 목적이 아닌, 돈은 단지 재화나 용역을 구매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한 인간실험이었을까?

3. 6시 반 - 공연관람 시작

메인무대에서는 김창완 밴드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일단 날씨가 너무 덥고 배가 고팠다. 목도 너무 타고.. 김창완은 나중에라도 볼수 있겠지라는 생각도 컸고..

메인 무대 뒤편에 마련된 티머니 충전소에서 돈을 충전하고 뉴욕핫도그 2개와 맥주 한잔을 먹으니 바람도 솔솔 불어왔다. 그리고 이때 화장실을 한번 다녀왔는데 신기한건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나가 휴게소에 도착할때까지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는 것.. 도대체 몇시간을 참은거지?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아니면 내 몸이 락페스티발용 모드로 급 바뀐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럭저럭 계속 참을 수 있었다.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이고 나니, 김창완밴드의 공연이 모두 끝나서 서브무대로 갔더니, 검정치마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평소에 잘 듣지 않았던 밴드인데 생각보다 보컬이 좋았다. 기타도 잘 후리고.. 모르는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 10분도 못 견디는 내 성격에 나름 볼만 했던 공연

자, 제 점수는요...

4. 7시 반 - 록앤롤의 황제 엘비스코스텔로 Retuns

검정치마가 마지막곡을 할 무렵 메인무대에 엘비스 코스텔로의 공연시간이 다가왔고, 나름 기대를 했던 터라 급히 몸을 움직였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엘비스코스텔로의 공연이 막 시작하고 있었고 밀집페도라를 쓴채로 올블랙 셔츠와 타이에 스트라이프 수트를 입은 차림으로 롹킹을 시작했다.

기타 연주 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엘비스코스텔로가 2곡쯤 끝내고 나서 밴드 멤버를 소개할 때 기타리스트가 누군지 자세히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기타리스트를 소개하지 않았다.

기타가 한대.

바로 엘비스코스텔로 본인이 노래하면서 연주한 기타가 유일했던 것! 기타 연주가 너무 훌륭해서 당연히 엘비스코스텔로가 치는 거 말고 별도의 기타리스트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럴수가...

그 순간부터 나는 엘비스코스텔로의 보컬과 기타 연주 하나하나에 눈과 귀를 떼지 못했다. 사람의 손을 보면 그가 얼마나 늙었는지 알수 있다. 그의 손은 평범한 노인의 손이었으나, 그의 목소리와 손놀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커트코베인이 죽지 않고 늙었다면 그렇게 되었을까? (엘비스코스텔로의 기타 역시 펜더 재즈마스터..)

사실 엘비스코스텔로의 노래는 말랑말랑한 노팅힐 주제가 "She"밖에 몰랐었는데 그의 연주와 목소리가 너무나 쌩쌩해서 그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구경했다. 노래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재밌었을까..

모르는 곡으로 청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그의 목소리와 연주력에 집중을 하였지 그가 연주하는 곡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깊은 감동까지는 느끼지 못하던 차였다. (물론 그 더운 날씨에 수트를 장착하고 구슬같은 땀을 뚝뚝흘리며 기타를 치고 열창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멋졌다)

5. 8시 - 감동의 귀환

기타로 코드를 한번 "쨍" 하고 갈긴 다음, 엘비스가 마이크에 "I Want You"라고 외쳤을 때, 나는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명곡은 단 3초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엘비스코스텔로는 I Want You.. 이 곡을 거의 10분간 연주했다. 그리고 이 곡을 연주했던 시간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선의 변화는 매우 드라마틱했다. (어떻게 이렇게 장엄한 곡을 만들었을까)

곡은 절실하게 처절하면서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솟구치던 그 순간 엘비스 코스텔로가 가장 불같은 기타 솔로를 연주했다. 기타를 테크닉이 아닌 감정을 실어 연주한다는 그 클리셰같은 표현이외에 다른 표현이 감히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기타가 또 하나의 처절한 보컬이 되었다.

기타 솔로가 끝난후 힘을 빼고 또다시 반복적으로 외쳤다. "I Want You…" 그리고 막바지에 다달았을때 그가 마치 온몸으로 뱉어내듯히 강하게 한번 더 외쳤다. 다소 창피하지만 나는 이 외마디 외침에 내 감정이 많이 흔들려버린 것을 인정해야겠다.

엘비스코스텔로를 보면서 나는 음악을 하고 싶고, 기타를 잘 연주하고 싶은 무한한 열망(욕망)에 휩싸였다.

그는 내가 근래에 본 라이브 뮤지션 중에서 제일 근사했다.

6. 9시 반 - 라디오헤드 라이즈

예정됐던 시간인 9시 반보다 조금 일찍 공연이 시작했다. 불과 몇분이긴 했지만, 얼마전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에릿베네가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늦게 시작하고 정시에 끝내버린 아픈 기억이 있다보니, 라디오헤드같은 대가들이 시간엄수를 잘 해줬다는게 참 신기하다. 게다가 예정된 시간보다 거의 40분을 훌쩍넘은 11시 40분이 되어서야 공연이 끝났다. (앵콜을 3번 정도 한 듯)

기대했던 1시간 반의 예정시간보다 30분이상 길어진 공연에 관객들 모두 감동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너무 최근 앨범에서 나온 곡들을 위주로 하다보니 관객들이 따라부를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었다는 거다.

하지만 역시나 3집인 "OK Computer"의 수록곡인 파라노이드안드로이드나 카르마폴리스, 엑시트뮤직을 불렀을때 수만명의 관중들이 떼창으로 응대했다. 어차피 CREEP을 불러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접었던 터라, 오케이컴퓨터 수록곡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아.. 네.. 라디오헤드느님.. 굽신굽신.."

엘비스코스텔로가 전통적인 락밴드의 구성으로 전형적인 롹앤롤 사운드의 진수를 보여줬다면 라디오헤드는 라이브 무대가 아닌 마치 스튜디오의 녹음실을 방불케하는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이제 라디오헤드는 뮤지션이라 부르지 말고 그냥 "소리연구가"라고 불러야 할 것같다. 물론 무당 톰요크의 접신 퍼포먼스 역시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징어춤을 춘건 톰요크이지만, 톰요크의 오징어춤을 본 이후 모든 락밴드가 오징어처럼 보일 지어다.

아. 내가 아까 CJ 욕했었나? 미안해!! 티머니 카드 많이많이 팔어서 돈 많이 벌고 다음번엔 꼭 프린스 데려와줘!! 엉엉..

7. 자정 - 망할 CJ…

공연이 끝나고 주차한 곳으로 걸어가는데만 20여분..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차를 몰고 공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 아니.. 시작하지 못했다.

차를 돌리고 100여미터나 나아갔을까.. 옴짝달싹 못한 상태로 1시간 가까이 길에 갇혀버렸다. 앞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고가 난것일까, 아니면 차량을 통제한 것일까…

이 새대가리같은 CJ야, 표 팔린거 보면 얼마나 사람들이 오고, 얼마나 차들이 입장할 지 대략 예상할 수 있어야지. 그리고 무슨 공연을 이렇게 좁은 1차선으로 거의 3~4키로나 들어와야하는 좁은대서 하는거냐. 차라리 서울재즈페스티발처럼 올림픽공원에서 하든지 ㅠㅠ

아오 진짜 내가 지산 다신 가나봐라..

8. 공약

아무래도 안되겠다.

내가 다음번 지산벨리락페스티발 총책임자가 되어야겠다. 메인 헤드라이너는 프린스-레너드코헨-데이빗보위… 이렇게 하고 3일표만 50만원에 팔고, 티머니 기본 20만원어치 충전해서 주고, 주차장 10만대 자리 완비!! 화장실은 10미터마다 한개씩 설치하고, 맥주 무제한 공급…

그리고 입장객에게 프린스 티셔츠 무상 공급..

아니, 강제 공급...




뒤끝1. 라디오헤드 이 시발럼들아, 크립 좀 불러주면 어디 덧나니?

뒤끝2. 똥차라도 있어서 근처 사설주차장에 주차한 덕에 능욕을 면한 것 같아서 내 옥색라세티에 감사드림. 전언에 따르면 공영주차장에 주차한 사람은 셔틀버스를 새벽 3시까지 못 탔다고 하던데..

뒤끝3. 티머니 좆까!

뒤끝4. 들국화 형님들 공연 안가서 미안해요, 나름 앞에 자리잡고 있어서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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