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12월로 예정되었던 맥스웰 공연이 취소된 까닭에 아마도 올해 나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노라존스의 공연, 올해 나는 그 어느 해보다 많은 공연을 보았는데 우선 올해에 유독 내한공연이 많았던 것도 있고, 아마도 올해엔 옷을 사는데 그닥 큰 관심이 없었던 것도 있었다.

그 여느 아티스트 공연때와 달리 이 공연에 큰 기대를 하였던 이유는, 최근 내가 노라존스를 내 패보릿 아티스트 다섯손가락에 넣을 정도로 푹 빠졌던 것, 그리고 공연장에서 부를 곡들을 내가 거의 다 안다는 것.. 사실 이 두가지를 모두 충족한 채 감상한 아티스트는 프린스와 레니크라비츠가 유일했다. (맥스웰도 그럴뻔 했었기 때문에 너무 아쉽다)

예정된 공연 예정 시작시각 일곱시가 조금 지나고 검은 원피스에 짧게 자른 앞머리에 꽁지머리를 한 노라존스가 무대로 올라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비급 영화 포스터를 오마쥬했던 앨범커버 상의 곱슬머리로 얼굴을 반 가까이 가린 모습을 상상했으나 의외로 캐쥬얼한 헤어스타일을 보자 살짝 실망감이 들었다. 마치, 내 앞에서 별로 예뻐보이고 싶지 않아서 꾸미지 않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라.. (이쯤 되면 거의 스토커급인데.. 에미넴의 stan이 흘러나와도 어색하지 않겠다.ㅎㅎ)

하지만 그녀가 피아노 앞에서 스피커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내뱉기 시작했을 때, 내 다섯 감각은 모두 그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주위 모든 것을 한번에 망각시켜버렸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가 내놓은 최근 앨범 두장에서 나는 커다란 상실감을 읽었다, 아니 느꼈다. 그것이 그녀의 것이었든, 아니면 내것이었든...

그녀의 무대는 마치 팀버튼(비급영화나 연극스럽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결국 팀버튼이라는 클리셰에 의존하다니..)이 만들어 놓은 것처럼 희한하고 유치하고 조악(나쁜뜻없음)했다. 커다란 커튼과, 천장에 모빌처럼 매달려있는 종이학(혹시 서양에서도 종이학이 소원을 비는 상징이 있는걸까) 그리고 그 종이학을 비추어 주던 조명... 노래 하나하나 그런 셋팅이 하나의 연극 무대를 만들어주듯이 형형색색 변해갔다. 그녀는 1집을 냈던 스무살때보다 아마 지금 더 어(여)릴 것이다.

그러한 무대배경 속에 낮게 울려퍼지는 그녀의 음성, 둔탁하게 두드려댄 드럼 소리, 그리고 연신 괴기스럽게 울던 기타 사운드는 완벽한 비현실을 안겨주었다. 마치 마녀가 살던 집에 온 것 처럼...

특히 그녀가 all a dream을 부르던 순간은 그러한 순간이 가장 짙게 농축된 순간이었다. 낮은 목소리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던 곡 후반부 노라존스가 "우후-우우우후우..."하고 추임새를 넣자 주문에 걸린 사람이 깨어나듯, 차가운 현실이 공연장을 감싸게 된다.

그녀는 한곡 한곡이 끝난 후에 의무감처럼 매우 짧은 시간 방긋 웃으며 관객에 화답하고는 곧바로 다음곡들로 이어갔다. 관객들의 환호나 농담에 어린 아이처럼 푼수있게 까르르 웃었지만, 내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그녀의 표정은 무언가를 반추하듯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재즈라고하기엔 무색할 만큼 요상하게 변해버린 곡들의 성격상 그녀는 피아노앞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기타를 메고 노래한 시간이 더 많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진가는 나머지 밴드 멤버들이 무대를 잠시 퇴장한 사이 피아노 앞에 홀로 앉아 Don't know why를 불렀을 때 였다.

"My heart is drenched in wine"

그녀가 이 문장을 토해내는 순간 몸과 마음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휘몰아쳐왔다. 사실 나는 영어 듣기 실력이 엉망이라 저 가사를 한상 heart wrenching으로 들어왔다.

저 곡이 나왔을 당시, 저 멜로디와 가사는 그녀가 썼을까, 나의 50000함으로 미루어보건데, 그녀가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던 저 가사를 지난 10여년간 자기의 이야기로 채워나갔을런지 모른다. 빈병에 와인을 담는 것처럼... 때론 달콤하게, 때론 쓰디쓴 맛으로...

나이가 지긋한 점잖은 세션들에 둘러싸여 공주처럼 예쁘게 노래하던 그녀가 이젠, 삶의 아픔과 이별의 고통을 과감히 고백하고는 여왕의 지위에서 내려온 것 처럼 보인다. 이젠 그녀가 기타리스트의 오도방정 퍼포먼스를 지긋이 응시한다.

비록 궁궐을 버리고 어두컴컴한 숲속 깊숙한 곳에서 살고 있는 마녀지만 그녀는 여전히 공주의 품격을 버리지 못했으므로, 당분간은, 아니 오랫동안 그녀는 계속 사랑받을 것이다. 부디, 다음번 그녀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녀의 노래에 지나치게 감정이입되지 않길 바란다. 그녀가 행복하든, 아니면 내가 행복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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