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삼일절 새벽

짧은 시드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벌써 열흘 가까이 지났다.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느꼈는지 기록해보기로 한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여행기를 쓸수 있었던 것처럼 나의 여행기는 시간이 흐른다 할지라도 좀처럼 왜곡될 염려가 없다. 나란 인간은 뻔하게 준비하고 뻔하게 행동 했으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단지 프린스의 공연 뿐이었다.

출국일이었던 목요일, 미리 써두었던 여행기와 달리 나의 기대(예상)은 고스란히 빗나갔다. 물론 나의 공항도착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캐세이퍼시픽 체크인 창구의 오픈 시간을 계산하지 않았던 것…

일상에 있어서 변수란 양념같은 것이지만, 여행은 온통 변수로 꽉 채워져있다.

2시가 되기전에 도착했지만 5시가 넘어서야 탑승권을 찾고 나의 소중한 물건이 잔뜩 들어있는 (그리고 나의 근심걱정덕분에 2배는 더 무거워진) 캐리어를 실어보낼 수 있었다. 완탕 한사발을 들이키고 비행기를 탔는데 제1회 박근혜대통령배 근심걱정대회 대상인 나를 말려 죽이려는지 비행기 출발시간이 무려 40분이나 딜레이가 되었다.

나는 홍콩에서 겨우 1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환승을 해야했다.

초조하다. 걱정이 된다.

승무원이 주는 음료수 하나 제대로 받아먹기 바쁜 내가 비행기를 놓치는 걱정을 해야 한다니…

마음속으로 승무원을 3만번쯤 외친후 외마디 비명을 질러 승무원을 불렀다. 그리고 다음 비행기 표를 보여주면서 “이번 비행기가 딜레이되서 나 다음 비행기 놓칠까 걱정된다. 내가 이래뵈도 조선반도에서 제일 근심걱정이 심한 사람이다. 너 희봉닷컴 들어가봤니? 나 프린스 공연 꼭 봐야하는데 다음 비행기 못타면 내가 희봉닷컴에 여행기를 쓰지 못한다”라고 (영어로) 말했더니 승무원이 그냥 짧막하게 “돈 워리”라고 대답했다

시발롬…

근심걱정에 승무원에 대한 원망까지 얹어버린 3시간 반 (0.5 박근혜 시간)동안 음료수도 먹고 식사도 하고 어벤져스도 보면서 홍콩에 착륙했다. 다행히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환승할 항공편의 승무원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고 그의 도움으로 시드니행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기획되고 결정된 시드니 프린스 콘서트 여행

과감히 결단하고 비행기에 몸을 던졌지만 과거와는 달리 비행기가 지면을 뜨는 순간에도 나는 중력의 지표면에 구속될 것이라고 믿었던 세속에 대한 미련, 번민, 걱정 들을 하나도 떨궈내지 못했다. 나는 당장 다음달 먹고살 걱정을 해야한다. 이렇게 적지 않은 돈을 들여가며 가장 비싼 좌석의 콘서트를 한번도 아닌 네번이나 보고 오는게 맞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지금 몇살이지? 36살… 지금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저 꼬마를 아들로 삼고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나이인데 콘서트를 보러가는 중년이라니…

항상 나의 덕질을 숭고하고 신성한 것으로 포장하여 자위하였으나 이번만은 그럴 명분이 도저히 생기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쾌락과 유흥을 좇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같으면서도, 이제 유일하게 나로 하여금 내 몸과 마음을 일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해주는 덕질에서까지 망설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마음으로 시드니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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