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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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월요일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예정되었던 프린스의 공연 3개가 모두 끝났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분명 2월달에 예매를 할 때만 해도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언제 오나 싶었다.

서른세살은 내게 결코 익숙한 나이가 나이었다. 마치 서른 중반 반의 반, 반의 반의 반, 반의 반의 반의 반... 처럼 나는 완벽한 서른 중반이 되기 위한 반환점을 서른셋의 여름이라 생각했었던걸까

마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이를 한살 더 먹어버린 듯한 그런 기분... 공연을 보고 나서는 순간 내 마음은 어디에도 향해 있지 않았다.

그리고 1층으로 걸어갔는데 마침 매장에서 프린스 음악을 틀어주고 있어서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기념품 가게에 다시 들어가 버렸다. 좀비처럼 서성이다 전날 눈여겨 보았던 가방을 한개 사고, 프린스 티셔츠 다른 디자인이 하나 나왔길래 얼른 구매했다.

마음이 허전한거랑 기념품 사는건 전혀 다른 생각의 회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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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7시 기상...

몽트뢰에서의 마지막 하루. 밤 9시에 취리히에서 베를린 행 비행기를 타야한다.

숙소에서 몽트뢰 역까지는 버스로 5분
몽트뢰 역에서 취리히 까지 기차로 3시간 반
도합 3시간 35분...

남은 시각은 겨우 14시간 이므로 나는 촉박하게 움직여야 했다. 5분이라도 지체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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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없는 상태에서 숙소에서 몽트뢰 역까지는 걸어서 30분 남짓한 시간이고 프린스 공연을 본 13일부터 15일까지는 사실 카메라를 들고 다닐수가 없어서 아이폰으로만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오늘 만큼은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어깨에 두르고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숙소를 나왔다.

이때가 오전 9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3가지(바퀴, 활자, 희봉닷컴) 중 하나인 바퀴의 힘을 빌렸음에도 묵직한 캐리어는 내 활동반경을 0으로 수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디카를 들고 몽트뢰 레만 호숫가를 걸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원대한 계획은 포기 (하면 편해.. 정말 편해… 남는게 없어서 그렇지..)

결국 버스를 타고 몽트뢰역에 도착, 아직 이 작은 도시에 대한 미련이 남아 락커에 짐을 두고 페스티발 근처를 조금 돌아다니기로 했다.

(락커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안하는지 너무 불안해서 수십번을 고민했다. 라커가 열리지 않으면 어쩌지… 그러면 꼼짬없이 내 짐을 모두 놓고 가야하는데.. 아니지 힘으로 부수면 되지.. 무슨 말이야, 잼뚜껑도 제대로 못 따는 주제에 락커를 힘으로 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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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내를 돌아다녀야겠다고 마음 먹은건, 기념품을 사기 위함이었다. 내꺼 말고 지인들꺼…

타인의 선물을 산다는 것…

내가 제일 못하는 것 중에 하나… 괜찮은 물건을 발견한다 싶으면 일단 누군가에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전에 이 물건을 내가 갖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이라는 정성적인 것과 가격표라는 정량적인 것을 비교해야하는 어려움…

그리고 제일 곤란한 점은… 짐이 무거워진다는 것… 나의 거짓된 이타심이 무게로 치환되어 남은 여행기간 내내 나의 "매우 제한적인" 체력을 고갈시킨다는 점…

어쨋든 공연장 주변에 간이 천막으로 설치해놓은 공식 기념품 점에서 이것저것을 황급히 챙겨넣고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를 탔다. 이때가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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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에서 할 수 있는 (or/and 하고 싶은건) 건 별로 없다.

창밖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거나, 수첩에 무언가를 적거나… 아니면 노트북에 당시의 심경을 적거나… 하지만 이런 것들 모두 "무언가를 한다"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고, 사실 몽트뢰에서 있으면서 "무언가를 하지 않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호숫가의 릴렉스췌어에 1시간 정도 누워있었던 적 말고는…

내게 있어서 쉬는건, "아무것도 하지 않음"과 "무엇도 생각하지 않음"의 상태인데 투명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무언가 강박에 휩쌓여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기차 안에서는 모든 것을 집어넣고, 라바짜 커피 (믹스커피 같은게 5프랑이나 했었던 것 같다. 망할 스위스 물가)를 한개 시킨 다음, 아무 생각없이 창밖만 응시했다. 몇몇 카메라에 담고 싶은 풍경이 나오길래 잽사게 폰카로 찍어보았지만 소용없다는 걸 알고 이내 포기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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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공항에서, 그날 제대로 먹은 식사가 아침 조식뿐이었다는 사실과 급격한 체력저하로 인해 몸에서 열이 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푸드코트에 가서 밥을 먹었다.

태국음식인 것 같았는데, 치킨과 땅콩 그리고 쌀밥이 섞여있었고 반쯤 먹고 콜라를 벌컥 들이키자 배가 불러서 나머지를 통 먹을 수가 없었다. 이놈의 나라는 콜라를 사면 캔으로 안주고 꼭 페트병의 애매한 사이즈를 주는데, 나는 사실 캔 용량도 다 들이키기 힘든 위 용량을 가지고 있단 말야. 거인국에 간 소인같았다.

절반가격에 절반만 주면 안되나. 아니면 내년에는 박희봉을 한명 더 복제해서 데려가든지 해야지… 어차피 체류비는 별 차이 없을테니..

아니다

박희봉을 한명 더 데리고 가면 이 자식 투덜대는걸 어떻게 견디지.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여야 한다는데 나도 결국은 힘들다고 징징대기 전에 레만호수에 수트로 꽁꽁 묶고 돌맹이 달아서 던져버릴 것 같다.

수트 구겨질까봐 아무런 저항없이 호수 바닥까지 가라앉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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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 9시 반, 드디어 베를링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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