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2013년 7월 12일 새벽 12시 45분

1

아무런 음악을 듣지 않는 상태; 비행기 소음만 내 귀에 들릴 뿐

정말 몇 개월(?)만에 인터넷이 안되는 상태로 진입했다. 돈을 내면 인터넷과 전화를 할 수 있는 모양이지만 그냥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트위터에서 말장난 하는데 시간을 허비할 것이 뻔하고, 9시간 후면 다시 줄기차게 인터넷을 할테니까…

여행 첫 출발부터 운이 좋은 것 같다. 내 옆자리가 비어있다니… 옆자리에 비어있는 덕분에 내 가방을 바닥이 아닌 옆자리 의자에 놓을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 난 내 물건을 항상 내 시야 안에 두고 있어야 한다.

(가방이 옆에 있는 탓에 나는 유난히도 바스락거린다. 이걸 꺼냈다 저걸 꺼냈다. 이걸 정리했다가 저걸 정리했다가 이게 있나 없나 확인해보려 끄집어 냈다가... 내 옆옆에 앉은 흑인 신사가 참 거슬려할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은 내 양보없인 화장실도 가지 못하니 내게 뭐라고 말 못하겠지)

2

사무실에서 수트를 입은 채로 엑셀 쉬트와 씨름하다가 난 갑자기 콘서트를 보기 위한 작고 마른 덕후로 돌변해 버렸다. 그간 열심히 증진(?)했던 나의 사회성은 5분이면 무장해제가 되어 버린다.

나는 나의 현재를 이렇게 훌훌 가볍게 털어 버렸다.

그리고는 내 과거의 끈을 질기게 붙잡은 채, 나의 미래를 조심스레 내다본다. 나의 유년 시절부터 17년째 듣고 있는 프린스의 음악과, 요즘 들어 부쩍 나의 귀를 잡아 끄는 쳇베이커의 재즈와 레너드코헨의 포크 음악. 너무나 이질 적인 두 음악의 간극 만큼 나의 과거와 미래는 그렇게 다를 것이다. 결국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변할 것이다.

일주일 간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 간극을 체험 해야 한다.

3

1시가 다 되어 기내식을 먹고, 커피를 한잔 들이킨 다음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인터넷이 안되는 탓에 좀더 글을 쓸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다. 사실 이번 여행은 공연보는 것 반, 글쓰는 것 반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가 그곳에서 낯선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새로운 미지의 영역을 탐험한다거나 하는 것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걸 해야한다. 적지 않은 돈을 쓰고 내 황금같은 시간과 체력을 써가면서 하는 짓인데 무언가에 억지로 끌려 다녀선 안된다.

4

허리가 아프고 잠이 오질 않아 승무원에게 맥주를 달라고 부탁하고는 정체를 모를 맥주를 받았으나, 나를 위해 친절하게 맥주를 갖다준 승무원에게 "나는 버드와이저를 좋아하니 바꿔달라"고 할수 없어 그냥 마셨다. 절반 이상 마시고는 취기가 돌아서 쳇베이커의 앨범을 듣다가 잠이 들었다.

이제 8시다. 기내에서 8시간 동안 뭔가 대단한 걸 하거나 (가령 독일 투어북을 독파한다던지…) 아이패드에 담아온 싱글맨과 파리텍사스 중 하나를 보게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간은 빨리도 흘러간다.

은하철도999에 탑승한 철이처럼… 지루하고 지리한 시간을 내성이 길러졌나보다.
지루한 33년을 견뎠으니, 이깟 9시간 쯤이야

제프버클리의 할렐루야가 흘러나온다.

희봉

2013.07.12 1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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