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한국시각 2010년 12월 31일 오전 5시 36분…

Now Playing – David Bowie “Be my wife”

드디어 약 3개월 남짓간의 뉴욕생활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창밖의 풍경 따위는 모두 포기하고, 화장실과 가장 가깝고, 유일하게 두좌석만 붙어있는 맨 뒷자리 통로쪽에 자리 잡았다. 내 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것이 맘에 걸리지만 마치 화장실을 내가 전세낸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창가쪽에 앉은 중년의 홍콩 신사에게 화장실갈 수 있는 횟수를 50번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물론 우리는 적극적인 합의도 있었다. 비행기가 출발하고 처음 5분 동안 나는 의자 손잡이를 불규칙적으로 50번 두드렸고, 신사는 무응답으로 동의했다) 신사는 비행기가 뜬 이후 4시간만에 화장실을 한번 이용했다. 이제 49번 남았다.

최근 약 1주일 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약간의 홧병(?!)에 음식도 모두 질리고, 낮과 밤이 바뀐 폐인생활로 살도 많이 빠졌다. 이제 콜라 한모금없이는 어떤 음식도 삼킬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어머, 왜 이렇게 말랐어”라고 했을 때 뾰족히 떠오르는 변명이 없다. “뉴요커들은 하루에 한끼만 먹어!”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프린스 뉴욕공연 성사기념 단식투쟁”했다고 하는 편이 더 신빙성있게 들리겠지?!

Now Playing – Joni Mitchell “Blue”, “River”

세상만사 모두 팽기치고 도피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두가지를 당부하셨다. 살을 찌울 것과 손톱을 기를 것(정확히 말하자면 물어뜯지 말것)…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모두 지키지 못했다. 나는 편하게 쉴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나의 몸과 마음을 혹사시킨다. 오히려 적당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나를 살찌운다. 나를 살찌우는 곳으로부터 나는 도피했다.

10년간의 도피. 나는 항상 누군가로부터, 혹은 나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도망쳤다. 아무런 계획없이, 그저 나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달라며 당부하고 입성한 뉴욕… 하지만 뉴욕에서 내가 만나거나 경험한 가장 놀랍고 잊지 못할 추억들은 모두 내가 뉴욕에 오기 전에 이미 잉태된 것들이었다. 그리고 뉴욕은 떠나기 바로 전날, 가장 놀라운 운명(우연)의 거울에 내 자신을 투명하게 비추었다. 그것은 지난 10년간 내가 도망쳐 왔었던 것들의 시작이었다. 이미 오래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믿었던, 향수같은 기억이 내 머리 속에 진하게 풍겼다.

“10년..”

나도 이제 10년이라는 시간을 반추할 수 있을 만큼 나이들어 버렸다.

Now Playing – Leonard Cohen “Famous Blue Raincoat”

이제 한숨 자야겠다.

Now Playing – Norah Jones “Tell Your Mama”

두어번 잠을 청해보았지만 잠자리가 영 불편해서 잠을 이룰수 없었다. 내가 몇시간이나 잔것인지 알수없다. 시계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한 10분 정도 잤을까? 아니면 4~5시간 잔 것일까? 언젠가부터 내 몸은 마비된 것처럼.. 피로나 배고픔으로부터 해방되기라도 한걸까? 아니라면, 프린스 공연을 보고 회춘한 프린스의 정기를 내가 받기라도 한 것일까? 서른살의 나보다 52살의 프린스가 몇배는 더 건강하고 기력있어 보인다. 나는 많이 먹기로 했다.

Now Playing – Brett Anderson “Back to you”

뉴욕에 오기전, 2010년을 관통한 노래는 언제나 브렛앤더슨과 노라존스였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노라존스와 브렛앤더슨의 노래는 더 이상 나를 감흥시키지 않는다. 다행이다. 나는 어느정도 치유된 듯 하다. 지긋지긋한 염병과 중2병… (나이 서른에 중2병이라니!!…) 이제 다시 마음껏 프린스, 데이빗보위, 조니미첼 그리고 케이트부쉬 음악을 들을 수 있겠다.

Now Playing – Kate Bush “Wuthering Heights”

케이트부쉬의 목소리에 휘감겨 다시 잠을 청해본다.

자는 것에 다시 한번 실패하고 영화를 틀었다. A Single Man… 구지 보지 않은 영화들이 내 컴퓨터 안에 가득함에도 나는 본능적으로 이 영화를 제일 먼저 켠다. 보통은 오프닝 시퀀스가 나올 때 화면을 닫는다. 하지만 오늘은 그 어느때보다도 이 영화를 보려는 의지가 없었음에도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마치 영화를 처음 본 것처럼 몰입해버렸다. 그리고 1시간 반 동안 영화를 쉬지 않고 내리 봐버렸다. 이 영화는 내가 수트를 좋아하는 한 언제고 계속 볼 것같다. 이 영화를 보면 볼수록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대사나 인물의 표정이 한두개씩 나의 영화 감상 두뇌를 자극한다. 아마 머지않아 장면장면 어떤 대사들이 나오는지까지 외워버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될수있다면 영어 대사도 알아듣고 싶다. 이 영화를 톰포드(Tom Ford) 감독이 의도한대로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 DVD가 나왔겠지? 한국에 가면 제일 먼저 사야겠다.

이제 홍콩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어서 빨리 집에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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