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날을 샜다

공중파에서 해주는 말도 안되는 영화를 세시까지 보고, 핸드폰 게임도 한시간 하고 보니 4시가 금방 되었다. 3시쯤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당신 지금 안자지? 내가 마중나가리다"

새벽 6시 반쯤 되어 부시시한 얼굴로 친구를 맞이했다. 친구는 나를 군대보내는 것같아서 안쓰러운 마음에 나왔다고 했다. 아마도 나의 마음을 제일 알고 있을지도 몰라...

마냥 들떠있지만은 않은 나의 뉴욕 여행은... 내 뉴욕 여행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은 친구의 배웅으로 차분하게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홍콩...

작년 여름 나는 무언가 아무것도 맘에 들지 않아서 홍콩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었다. 그리고 지금 작년 내가 홍콩에 갔었던 그 똑같은 심정으로 뉴욕으로 향한다.

기대하고 가지 않을테니..

멋진 걸 보여주렴...

뉴욕!



**추가**  한국 시각 2010년 10월 10일 오후 12시 반, 뉴욕시각 밤 11시 반... 비행기안에서 워드로 적었던 것을 옮겨적는다..


기다리는 시간…

한국은 “시덥지 않은 핸드폰” 광고 시그널와 함께 9시를 알리는 뉴스가 시작할 시간이고, 뉴욕은 토요일 아침 8시.. 그리고 이곳은 어느 칠흙같이 어두운 어느 상공… 기내마저 어둡게 소등되었다.

뉴욕행 비행기 (CX840)을 타고 하늘로 올라온지 3시간이 흘렀다.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하고, 그누구에게 멋지게 보일 필요도 없음에, 렌즈를 빼고 골뱅이 안경을 착용한 후, 의자를 뒤로 힘껏 빼고 노트북을 열었다.

비행시간 15시간 동안 어떤 것을 하면서 시간을 떼워야 하나 걱정하며 어젯밤 잠 한숨 자지 않고 버텼건만, 막상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것은… 맛있는 것을 아껴먹는 것, 인터넷 쇼핑을 한 후, 물건이 오기 전까지의 셀레임.. 이런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 날개에 하얗고 커다른 불빛을 켜놓았는데, 처음에는 이것이 날개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미쳐 하지 못했다.. 저것은 뭘까?. 저 멀리 날아오는 또 다른 비행기의 불빛은 아닐까 하고 겁에 질려버렸다. (심리적으로 불빛이 자꾸 가까이 오는 것만 같아서…) 1시간 넘게 그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의 엉뚱한 생각은 여기저기로 튀기 시작했다. 북극에 수천키로미터짜리 등대라도 설치해놓은 걸까? 그럴리가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다른 마땅한 가설이 등장하지 않아서 “날개_불빛설”을 고안(착안)해내기 전까지는 그렇다고 믿었다. 마치 천동설을 믿었던 옛날 사람들 처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이렇게 황당무계한 것들이 몇 개나 더 있을까…

소등이 되기 무섭게 옆에 앉아있는 일본인 아줌마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나는 화장실에갈 수 있는 자유를 잃었다. 밖을 보고싶은 사소한 욕심 때문에 나는 통로 자리를 내어주었고, 이는 결국 구속이었다. 소의를 위해 대의를 저버린 것이다.

나는 나의 행동반경이 다른 사람의 양해를 전제로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미안한 사람”이다. 나의 존재는 그냥 송구스러울 뿐이다. 피츠버그에 사는 친구 녀석은 “내가 남을 불편하게 할 지언정, 남이 나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겟다”라며 창가 자리를 고수한다지만, 나는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송구스러운 존재는 화장실에 가서도 죄인이 된다.. “빨리 씻고 나가야지” 내 앞에서 기다리던 중국인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이내 못참고 화장실 문들 두드렸다. 채 1분이 되지 않아 한국인(공교롭게도?)인 것 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가 황망하게 기어나왔고, 이를 목격한 나는 내가 들어가 있는 동안 누군가 내 화장실 문을 두드리지 않기 위해 짧은 몸을 바삐 놀렸다.

약 5시간 후… (한국시각 10월 10일 새벽 2시 47분… 미국시각 10월 9일 오후 1시 47분)

2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깼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옆좌석에 곤히 자고 있는 일본 아줌마를 깨우고 화장실에 다녀온후, 좌석마다 설치되어있는 모니터를 조작해봤는데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도 상당히 많이 들어있었다. 팝음악의 주요 명반은 거의 다 있는 것 같아서 사뭇 놀랐다. 조지미첼의 Blue와 데이빗보위의 지기스타더스트 앨범을 다 듣고, 지금은 엘튼존의 굿바이노란벽돌길 앨범을 듣고 있다. 아는 노래 말고는 별로 꽂히지 않는다. 아마도 비행기 소음때문 인 것같다. 승무원들은 어떻게 이런 비행기를 매일 타는거지? 나같으면 스트레스로 미쳐버릴텐데…

이제 약 6시간 정도 남았다. 이제 슬슬 지겹다… 수면유도제 반알을 먹었는데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도착 1시간 전…

수면유도제의 강력한 힘으로 약 3~4시간의 시간여행을 경험하고 정신을 못차리고 헤롱거리다가 2번째 meal을 나눠주기 시작한 것을 목격… 전쟁터에서 포탄을 맞은 병사가 혼미해진 정신을 추수리듯이 밥을 먹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돼지고기랑 생선 중에 고르라는 승무원의 말에, 최근 나의 설사의 주범인 돼지고기를 피하고자 하였으나, 생선은 다 떨어졌다 하여 어쩔수 없이 돼지고기와 밥을 억지로 입으로 밀어넣었다.

창밖은 아직 밝다. 마치 DAWN이 온것처럼.. 비행경로를 보니 북극을 따라 캐나다에서 뉴욕으로 내려오는 루트였다. 혹시나 북미대륙을 동서로 관통하는 것은 아닌가 기대했었는데… 창밖의 구름은 정말 양탄자처럼 (너무 클리셰같아서 피하고 싶었던 표현이지만 말이다..) 펼쳐져있고, 눈을 뗄수 없는 것은 그 아름다움 때문인지, 아니면 기내에 구속된 나의 시야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욕구인지 모르겠다.

인간이 달을 탐사할 때 원숭이를 먼저보냈지.. (개였었나?... 구름위에서는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없으니 영락없는 원시인이나 다름없군…) 하지만 인간이 구름위로 처음 올라갈때는 무엇을 먼저 보냈을까? 처음 구름위에서 하늘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거의 뒷자리에 앉았는데, 내 옆으로 길게 화장실에 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내 방광이 터질 지경인데 구름따위에 신경쓰다가 화장실 갈 타이밍도 놓쳐버렸군…’

이제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졌으며, 저 멀리 노란 불빛으로 가득한 도시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Hello Again! America!

나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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