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고등학교 2학년때, 나이가 지긋하시고 점잖으셨던 생물 선생님이 수업을 하기 전에 갑자기 모두에게 질문을 하였다. 자기 인생의 모토가 뭐냐고…

다들 그럴싸하기만 하고 재미없는 대답을 늘어놓다가 내 차례가 되었는데,

"요령껏 사는 것 입니다!"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재밌게 하려는 의도 99% 진심 1%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말 한마디로 좌중을 웃기고, 선생님은 장난 치지 말라는 식으로 다그친 다음 그냥 지나갔다. 아마 이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 이외엔 이제 아무도 없겠지.

그런데 나는 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연유에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뱉어버린 그 문장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것이 장난삼아 뱉은 말이 아닌, 사실 진정한 나의 모토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공식을 암기하고, 문제를 풀고 하는 과정을 모두 요령껏.. 꼼수를 부리는 차원에서 접근했다. 그리고 그게 통했다. 그래서 점점 더 세상의 모든 것에 어느 정도 광범위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공식이나 요령이 있다고 믿어왔다.

나는 머리가 매우 좋은 아이였으나,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직접 풀기 보다 이를 회피할 궁리만 어떻게든 찾아왔다.

하지만 모든 것에 공식이 있거나 규칙이 있는 건 아니었다. 가끔씩은 Case by case로 내 온몸을 불살라가야할 때가 있었다. 그런 때가 되면 나는 내가 과연 요령을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머리를 먼저 굴리고 발을 빼기 일쑤였다.

멈칫멈칫..

내 인생은 그렇게 항상 계산하고 멈칫거리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들의 적분이었다.

비록 지금 늦은 것 같지만…

이제 요령을 잠시 접어두고, 한번 내 몸을 던져봐야겠다. 부서지도록 부딫히고 상처받을 지라도…

추신. 버나드쇼의 무덤에 "우물쭈물하다가 그렇게 될줄 알았다"라는 말이 써있다고 하지.. 내 묘비명에도 아마 "요령껏 살다 죽다"라는 말을 써넣어야할지도..

희봉

2012.11.27 00:52:59

지금 내 직업이 내 적성이 아닌 것 같다. 더 이상 요령으로 버티기 힘들다...

희봉

2012.11.27 00:53:39

"그건 잘 모르겠는데?"라는 말이 나오는 빈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어려운 질문을 많는건지. 아니면 내가 바보가 되어가고 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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