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항상 중요한 일이 있으면 일단 식욕은 떨어지고, 체력은 극도로 저하된 상태에서 정신은 말똥말똥하게 된다. 작년 프린스 공연때도 그랬다. 혹시나 공연도중 폭풍설사의 우려로 인해 김밥 한줄 먹고 꼬르륵 거리는 상태에서 공연을 봤었다.

이번엔 점심부터 조심히 먹었다. 혹시라도 과식이나 장에 무리가 가는 음식을 먹지 않도록... 저녁은 햄버거로 간단히 먹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프린스 공연같으면 공연시작시간 2시간 전부터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앉아 저질체력을 위한 휴식시간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이번 공연은 왠지 빨리 가고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어차피 스탠딩이고, 내 저질 체격/체력은 스탠딩 앞자리를 차지할 만큼 유용하지 못하니까..

공연시작시간 20분전쯤 스탠딩 구역에 들어섰다. 중간쯤엔 사람들이 밀집되어있고 구석탱이에 인구밀도가 낮길래 그쪽으로 향했다. 스탠딩엔 여중생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남자가 많았다. (그런데 키큰 남자는 별로 없었다는 것 -_-;; 2년전 유니클로에서 +J를 처음 런칭했을때 롯데 유니클로 플래그쉽샵 앞에 서있던 수많은 키작고 마른 녀석들(또 다른 나)을 다시 본 기분이었달까..)

잡설 집어치우고..

20분쯤 공연이 지연되어 나의 저질체력은 점점 더 고갈되어가는 와중.. 조명이 꺼진 어두운 가운데 키크고 마른 우월한 기럭지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하고 관중들 함성 시작.

언제나 그렇듯 Relax, Take it easy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내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최고의 떼창이 시작되었다. 아마 모든 곡의 후렴을 사람들이 열창했다. (심지어 불어로 만들어진 신곡 엘므디까지.. -_-;; 앵간한건 다 따라할 수 있는데 엘므디를 못따라 불러서 빈정상했다능..)

다음곡으로 Big Birl이 열창되고 또 다시 떼창 및 방방뛰기가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미카의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창 달리기만 했던 것같다. 발라드풍의 곡이 거의 없었잖아. 젠장... over my shoulder한번 불러주면 어디 덧나니.

이어서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함께 내가 2집에서 제일 사랑하는 Blue Eyes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Blue eyes, blue eyes, what's the matter with you.. 후렴구를 따라부르다 보니 청승맞게 울컥하는 감정까지 솟아올랐다. 언제나 미카 2집을 감상하면서 앨범을 지배하는 정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곡이 Blue Eyes와 Toy Boy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려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10대의 감수성...

나는 중2병이 걸린 것도 아닌데 왜 아직까지 이러고 있는걸까?

미카 공연은 남들과 조금 다른 사람들(속칭 "루저"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거대한 유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이 곳에선 어느 것도 신성시되거나 진지하게 취급받지 못한다. 혁명군의 길로틴에 목이 잘린 마리앙뜨와네트는 연신 코르셋을 들추며 노래하고, 미카는 미치광이 황제라도 된듯 칼로 밴드 멤버를 찌르는 시늉까지 한다. 눈을 가리고 얼굴에 토끼가면을 쓰고.. 모든 것이 과장되고 흥분되어있다. 2시간 동안 관객들은 현실세계로부터 철저히 격리된다.

마치 토끼굴을 따라 들어온 앨리스가 된 것처럼..

따라서 Blues Eye와 Toy Boy가 Mika를 위한 주제가라면 Kick Ass와 We are golden은 관객들을 위한 주제가다. "We r young, we r stong...", "we r not what u think we r, we r golden... we r golden.." 사람들은 외치고 싶은 만큼 외친다. 이 작은 공연장을 벗어나게 되면 이런 말을 해봤자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테니.. 부정하고 싶은 만큼 힘차게 외쳐 불렀다.

공연이 끝난 후 밖으로 나왔을때 밤기운에 기온이 제법 떨어졌다.

쌀쌀한 기운에 술이 빨리 깨듯이, 현실을 금방 깨닫고는 옷깃을 여미고 택시를 잡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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