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몇몇 포크 가수에 빠졌었던 이유
내가 몇몇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사가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Joni Mitchell, Leonard Cohen 그들의 노래를 가사를 생각하면서, 그 스토리를 상상하면서 듣고 있으면 마치 흑백 고전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가요를 잘 듣지 않는 이유는 노랫말이 너무 내게 직설적으로 와닿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언어적인 장벽때문에 포크 음악의 가사를 100% 그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내 자의로 해석(종종 오역)할 수 있는 여지를 크기 때문에 나의 시적 상상력을 조금 더 자극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예술이 "모호함의 경계" 안에서 아티스트와 그것을 즐기는 관객(?) 사이의 일종의 심리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ego는 내게 좀더 커다란 공간을 요구했었던 것같다. 따라서, 나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섯불리 좋아하지 않으나,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내가 아주 깊게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I Love U baby, but not like i love my guitar…"
2. 시는 내 인생이 타고 남은 재와도 같은 것…
“Poetry is just the evidence of life. If your life is burning well, poetry is just the ash”
"시는 인생의 증거이다, 당신이 인생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면, 당신의 시는 재밖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시인, 소설가, 저명한 교수, 멋있게 늙은 중년 남자, 포크가수… 내가 이 중 그 어떤 하나라도 그가 이룬 것의 반만 이루었다면 하고 느꼈던, 레너드 코헨의 말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멋진 시로 미루어보아, 그 역시 자신의 인생을 전부 다 태우지 못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런, 제길 도대체 얼마나 멋지게 살아야 하는거지?
3. 무제
"오랫동안 불행이야 말로 내 시의 원천이었다. 이제 그 원천을 폐쇄해버리고 다른 원천을 찾아내고 싶다. 이를테면 유머, 육체의 기쁨, 더이상 어떤 이유로도 유예하고싶지 않은 행복들....어둠, 절망, 불행들은 상대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만 행복속으로 망명하고 싶다. 망명한 후에 내 시집들을 사라질 운명의 것들, 이를테면 지난해의 달력, 바스라져버리는 마른 잎사귀들, 물이 말라버린 우물, 석양빛, 파충류의 허물들...의 목록속에 넣어버리고 싶다. 빛바래도록 오래 팽개쳐두고 싶다."
장석주 시집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문지)> 自序
4. 나만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맥북을 사버렸다고 글을 썼을때, 이미 그 열병과도 같은 것을 이미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과 함께 보냈던 나의 누나는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세상에 하고싶은 나만의 말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야하는 것이기에 위험하기도 하다는.
5. 내 인생에 시가 남지 않도록…
따라서 나는 이렇게 내 몸속에서 자꾸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나오는, 불완전연소된 연기와도 같은 이 것을 막아보려 한다. 그것이 비록 아름답다 할지라도
"저 아름다운 석양은 도시의 매연이 만드는 것이에요, 추한 것들도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있죠" - from 영화 "A Single Man"
그래서 나는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 절망이 꽃피운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인생의 시가 남지 않도록 모든 것을 태우면서 살아가고 싶다.
가끔은 햄릿 3121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같은 내 머리의 스위치를 잠시 내리고,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추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DVD PLAYER는 "화양연화"를 상영하고 있다. 이게 마지막이야. 너는 이제 다시 보지 않을거야..
내가 몇몇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사가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Joni Mitchell, Leonard Cohen 그들의 노래를 가사를 생각하면서, 그 스토리를 상상하면서 듣고 있으면 마치 흑백 고전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가요를 잘 듣지 않는 이유는 노랫말이 너무 내게 직설적으로 와닿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언어적인 장벽때문에 포크 음악의 가사를 100% 그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내 자의로 해석(종종 오역)할 수 있는 여지를 크기 때문에 나의 시적 상상력을 조금 더 자극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예술이 "모호함의 경계" 안에서 아티스트와 그것을 즐기는 관객(?) 사이의 일종의 심리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ego는 내게 좀더 커다란 공간을 요구했었던 것같다. 따라서, 나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섯불리 좋아하지 않으나,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내가 아주 깊게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I Love U baby, but not like i love my guitar…"
2. 시는 내 인생이 타고 남은 재와도 같은 것…
“Poetry is just the evidence of life. If your life is burning well, poetry is just the ash”
"시는 인생의 증거이다, 당신이 인생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면, 당신의 시는 재밖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시인, 소설가, 저명한 교수, 멋있게 늙은 중년 남자, 포크가수… 내가 이 중 그 어떤 하나라도 그가 이룬 것의 반만 이루었다면 하고 느꼈던, 레너드 코헨의 말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멋진 시로 미루어보아, 그 역시 자신의 인생을 전부 다 태우지 못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런, 제길 도대체 얼마나 멋지게 살아야 하는거지?
3. 무제
"오랫동안 불행이야 말로 내 시의 원천이었다. 이제 그 원천을 폐쇄해버리고 다른 원천을 찾아내고 싶다. 이를테면 유머, 육체의 기쁨, 더이상 어떤 이유로도 유예하고싶지 않은 행복들....어둠, 절망, 불행들은 상대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만 행복속으로 망명하고 싶다. 망명한 후에 내 시집들을 사라질 운명의 것들, 이를테면 지난해의 달력, 바스라져버리는 마른 잎사귀들, 물이 말라버린 우물, 석양빛, 파충류의 허물들...의 목록속에 넣어버리고 싶다. 빛바래도록 오래 팽개쳐두고 싶다."
장석주 시집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문지)> 自序
4. 나만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맥북을 사버렸다고 글을 썼을때, 이미 그 열병과도 같은 것을 이미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과 함께 보냈던 나의 누나는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세상에 하고싶은 나만의 말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야하는 것이기에 위험하기도 하다는.
5. 내 인생에 시가 남지 않도록…
따라서 나는 이렇게 내 몸속에서 자꾸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나오는, 불완전연소된 연기와도 같은 이 것을 막아보려 한다. 그것이 비록 아름답다 할지라도
"저 아름다운 석양은 도시의 매연이 만드는 것이에요, 추한 것들도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있죠" - from 영화 "A Single Man"
그래서 나는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 절망이 꽃피운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인생의 시가 남지 않도록 모든 것을 태우면서 살아가고 싶다.
가끔은 햄릿 3121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같은 내 머리의 스위치를 잠시 내리고,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추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DVD PLAYER는 "화양연화"를 상영하고 있다. 이게 마지막이야. 너는 이제 다시 보지 않을거야..
내가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아님. 언제나 그렇듯이 줏어들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