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1

평소보다 (아니, 내가 일어나야 하는 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일어났다. 어제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느라 늦게 잔 탓이겠지. 아무도 나에게 일찍 나오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9시까지 출근 하려는 강박이 있다. 출근 시간이 무너져버린다면 아마 내 개업생활 전체가 망가질 것이다. 일단 몸을 사무실에 던져놓기만 하면 거기선 맘놓고 놀지 못할테니까

어떤 음악도 듣고 싶지 않은 날이라 인터넷방송(정치 팟캐스트)을 들었는데 초대 손님의 말투, 목소리부터 맘에 들지 않았을 뿐아니라 식견의 수준도 그리 높지 않아서 괜히 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나의 차는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었으므로 중간에 끄고 다른 것을 고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바보같은 논평을 계속 들어야 하는 고역에 시달렸다.

멍청한 사람들의 멍청한 발언에 대한 참을성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저 사람은 그나마 책도 쓰고 라디오방송에 나와서 말을 할 정도면 나보다는 훨씬 더 똑똑한 사람이긴 할거야.

2

사실 어제 저녁에 영화를 본 것은 텀블러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화 캡쳐때문이었다. 여자가 챨리 채플린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

“우리 많이 닮았다는 거 아세요?”
“그런가요?”
“둘 다 정신이 딴 데 있잖아요”
“그래요?”

그리고 챨리 채플린의 깊은 미소

이 두 컷이 내 눈에 들어온 지 한달이 넘었지만 어떤 마법의 순간을 보는 것처럼 나는 이 장면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모든 장면은 모두 아름답지만 이 장면이 나의 마음을 유독 사로잡은 것은, 개성이 강한 자아로 남기를 바라면서 또 다른 (나와 아주 많이 닮은) 내가 어딘가에 있었으면 하는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생각때문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실제로 나도 정신이 항상 딴 데 가있거든…

3

6시에 사무실에서 나와 이마트로 향했다. 고기와 야채를 사고 집에 와서 맛있게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나니 시계가 9시 반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렇다 요즘 육식을 시전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부터 무려 5일 연속 고기를 먹고 있다)

백반집에서 대충 떼웠으면 15분만에 먹었을 것을 괜히 밥해먹는답시고 깝쳤다가 시간과 내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고 말았다.

삶은 왜 이토록 비효율적인 것일까

왜 똑똑한 사람들은 비효율의 세상에서 고통받도록 내버려져있는가

난 왜 비효율을 효율로 바꿀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못한걸까

4

똑똑한 사람에게 부조리를 던져주면 훌륭한 블랙 코메디가 나온다

희봉

2016.01.07 11:49:16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젯밤 올린 글을 본다. 지워야할지 말아야 할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난 내가 쓴 글이 맘에 들어

희봉

2016.01.07 11: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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