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 things, they say, never last




악몽

-장석주

몸을 눕히기가 무섭게
잠에 든다

봄은 어느 하늘 아래를 헤매고 있는지
개구리 울어대는 땅엔
얼마나 많은 복사꽃들이 분홍 구름처럼 만개했는지

나는 잠의 헛구렁에 빠져
악몽을 꾼다
깨고 나면
손에 움켜쥐었던 것을 놓아버린
이 막막한 상실감

날이 새면
힘차게 팔다리를 흔들며
저 거리로
나아가야 한다

사는 것이
발이 푹푹 꺼지는 느낌만 가득

어젯밤엔
긴 바다를 헤엄쳐 건너는데
바다는 얕고 험한 돌들만 삐죽삐죽 솟아 있어
내 가슴은 함부로 긁히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새벽엔
사람의 동체에 늑대 머리를 가진 짐승이
팔다리가 포박된 채 살아보겠다고
누군가 던져준 닭의 살점을 물어뜯는다

불쌍하구나, 사는 것
악몽 같은 것

죽은 어머니가 꿈에 자주 나타나
무슨 말인가를 할 듯 말 듯하시다가
끝내 입을 열지 않고 돌아선다

그제인가는
잎사귀 누렇게 변색된
병색 완연한 나무 한 그루 나타나길래
뿌리째 뽑았더니
나무 뿌리를 허연 폐비닐들이 흰 독사처럼 칭칭 감고 있다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동안에도
간밤 악몽들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니
세차하여 세워놓은 자동차 위를
도둑고양이가 마구 돌아다닌 듯
흙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누군가 내 삶에 찍는
난세의 어지러운 흔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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