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 things, they say, never last



봄날은 간다

기 형 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時着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런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고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小邑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宿醉는 몇 장 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
.

내용은 무척 어둡고 서글프지만 참 멋진 표현이 많은
시인것 같아요..
가령,,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라든가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그리고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
멋진 비유들로 가득찬 시인것 같습니다!!


아참, 하나 더 있네여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
그럼..즐시(?) 하시길...
List of Articles
공지 2003년 2월 - 보그걸에 소개된 희봉닷컴 [11] 희봉 2014-10-29 40513
공지 2014년 5월 - W 매거진에 나온 박희봉 인터뷰 ... [2] 희봉 2014-11-01 27891
97 서정주 - 봄 - 겨울나그네 2003-03-29 2708
96 안도현 - 연애편지 [2] 코스믹걸 2003-03-29 2065
95 이생진 - 무명도(無名島)- [13] 겨울나그네 2003-03-28 2818
94 신경림 - 목계장터 - [2] 겨울나그네 2003-03-26 2029
93 기 형 도 - 그집 앞 - [1] 겨울나그네 2003-03-22 1783
92 조병화 - 공존의 이유 - 겨울나그네 2003-03-21 2833
91 윤동주 - 가을밤 - [1] 겨울나그네 2003-03-20 1777
90 박재삼 - 울음이 타는 가을 강 [1] 달달무슨달 2003-03-19 1958
» 기형도 - 봄날은 간다 - 겨울나그네 2003-03-19 1839
88 김 지 하 - 노여움 - [4] 겨울나그네 2003-03-18 1780
87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의 의미 [3] 바로그 2003-03-17 1830
86 이성복 - 그 여름의 끝 - [1] 겨울나그네 2003-03-17 1949
85 안도현 - 제비꽃에 대하여 - [4] 겨울나그네 2003-03-15 1911
84 최승호 - 전집 [1] 송보람 2003-03-15 1857
83 기형도 "엄마걱정" [3] 겨울나그네 2003-03-14 2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