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 things, they say, never last



닐 영의 새 CD를 사와, 저녁 무렵 식칼을 한 손에 들고 주방에 서서 우엉과 당근의 킨피라(역주 : 우엉을 잘게 썰어 기름에 볶아 간장 등으로 조미한 요리)를 만들면서 혼자 들고있으니, 주변 공기가 애틋해지며 가슴이 뜨거워져 왔다. 닐영은 킨피라를 만들면서 듣기에 정말 좋지 않을까.
나는 '닐, 자네도 열심히 하게. 나도 이렇게 열심히 킨피라를 만들고 있잖아.'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완성된 킨피라를 갖다주고 싶다는 생각조차 했다. 그러나 치즈 오믈렛을 만들면서 들었다면, 그다지 깊이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닐영의 음악이란 기본적으로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옛날부터 미국의 비교적 심플한 락 음악을 좋아한다. 요즘 마음에 드는 것은 REM이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나 벡, 윌코. 그들의 신보가 나오면 만사 제쳐두고 레코드 가게에 간다. 쉐릴 크로도 좋다.
나는 이런 음악은 대체로 차안에서 듣는다. 역시 소리를 높여 듣고 싶은데, 집에서라면 '시끄러워!' 하는 항의가 들어오기 때문에 혼자 운전할 때면 아무에게도 신경 쓰지 않고 볼륨을 크게 할 수 있어 좋다. 그런 것, 참으로 기분 좋지 않을까.
특히 내 차는 지붕이 없어서 날씨 좋은 오후에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신나게 들으면서 바깥을 한 바퀴 돌면 머리가 시원해진다. 에릭 버든과 애니멀즈의 오래된 곡으로 "스카이 파일럿"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을 계속 틀어 놓고 핸들을 잡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고조된다. 사견이지만, 다차원의 세계에 가 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흥미 있는 분은 시험해 보시길(안전띠를 잊지 않도록).
음악에는 참으로 시추에이션이라는 것이 중요해서, 주방에서 아내가 혼자 킨피라를 만들 때의 백뮤직으로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어울리지 않는다. "스카이 파일럿"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때는 뭐니뭐니 해도 닐 영이다. 딱 맞는 음악이 등뒤에서 흐르고 있으면, 작업도 순조롭고 노동 의욕도 솟는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백뮤직을 골라야 하니, 그것은 그것대로 힘들지도 모른다. '오늘은 롤 캐비지를 만들 텐데, 자, 음악은 뭘로 할까.' 하고 생각하는 동안에 시간이 다 지나가 버릴 것 같다.
나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롤 캐비지를 만들 때는 예전에 프린스라고 불렸던 아티스트가 좋을 듯한 생각이 든다. 에릭 크랩튼은 버섯 우동을 만들 때에 좋고, 돈까스는 마빈 게이가 좋을 것 같다.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몹시 곤혹스럽지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주 : 이 원고는 아마데우스 현악 4중주단의 "모차르트 초기 현악 사중 연주곡"을 들으면서 썼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발췌했습니다
나 이러다 저작권 침해로 잡혀가는거 아닌가;;;;

댓글 '5'

cosmic

2003.05.28 00:35:08

마지막문단에 보면 '예전에 프린스라 불렸던..'이라는 부분은 해석을 잘못해서 그런걸까요? 괜한 의문이;;;;("--)(--")

꼬르륵

2003.05.28 00:36:15

왜 프린스 그 심볼로 바꿨을때 라디오나 티비 같은데서 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라고 소개하고 그랬었는데 그거 해석한건가보군요.,

희봉

2003.05.28 00:51:00

꼬르륵님 얘기가 맞아유~ :)

희봉

2003.05.28 00:51:35

2000년도 말인가 99년도 말에 다시 프린스로 개명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놀려댔죠 "과거에 프린스가 불리던 사나이라 불리던 사나이"

채니

2003.05.28 15:36:02

백뮤직은 참으로 중요해서 그 이전에는 일이 손에 안잡힌다에 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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