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 things, they say, never last




경남 충무나 고성 일대에서는 파리를 '포리'라 한다
'포리', 그러고 보면 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 초겨울
아파트 거실에 들어온 파리는 쫓아도 날아가지 않고,
날아도 이삼십 센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예의 반수면
상태에 빠져든다. '포리',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한사코 택시를 타지 않으신다 마늘이나 곶감이 가득
든 가방을 메고 그보다 더 무거운 사과 궤짝을 들고
버스 두 번 갈아타고 고층 아파트 아들 집을 찾으신다
때가 꼬지레한 바바리에 허리 굽은 노인은 예전에
라면이나 풀빵으로 끼니 때우며 자식 공부를 시켰지만,
취미라고는 별것 아닌 일에 벌컥벌컥 화내는 것이다
땅 한 뙈기 없는 집안의 삼대 독자, 백발의 아버지는
이제 할머니 제사 때도 목놓아 통곡하는 일이 없다.
헛도는 병마개처럼 꺽꺽거리는 헛기침이 추진 울음을
대신할 뿐, 요즘 아버지는 누가 핀잔해도 말씀이 없다
'포리', 지난번 묘사 때 할머니 산소 찾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힘에 부쳐 여러 번 숨을 몰아쉬다가 시동 꺼진
중고차처럼 멈춰 섰다 아내는 등 뒤에서 아버지를 밀어
드렸다 가다가 서고, 가다가 또 쉬고 얼마나 올랐을까
산중턱 바윗돌에 앉아 가쁜 숨 몰아쉬는 아버지의 뺨에,
거기까지 따라온 파리가 조용히 날개를 접었다



댓글 '2'

겨울나그네

2003.08.30 12:41:52

이 시를 보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시골의 아빠가 생각나더군요..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한 분들..
"취미라고는 별것 아닌 일에 벌컥벌컥 화내는 것" 이 부분에서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습니다..^^
하지만, 무뚝뚝함 뒤에 숨어 있는 자상함을 여러분들도 아시겠죠?
파리도 꽤 이쁜 곤충입니다..그죠?
요즘은 할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빠를 보고, 또 아빠를 닮은 동생을 보면서..피는 물보다 진해라고 느끼죠..^^
오늘의 결론.. 모두 효자, 효녀가 됩시다..^^

희봉

2003.08.31 02:19:14

네! 우리모두 효자, 효녀가 됩시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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