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 things, they say, never last




몹쓸 동경

-황지우


그대의 편지를 읽기 위해 다가간 창은 至福이 세상에
잠깐 새어들어오는 틈새; 영혼의 인화지 같은 것이 저 혼자
환하게 빛난다. 컴퓨터, 담뱃갑, 안경, 접어둔 畵集 등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천장에서, 방금 읽은 편지가 내려왔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니까 열광은 앳된 사랑 하나; 그 흔해빠진
짜증스런 어떤 운명이 미리서 기다리고 있던 다리를
그대가 절뚝거리면서 걸어올 게 뭔가.
이번 生에는 속하고 싶지 않다는 듯, 모든 도로의 길들
맨 끝으로 뒷걸음질치면서 천천히 나에게 오고 있는,
그러나 설렘이 없는 그 어떤 삶도
나는 수락할 수 없었으므로 매일, 베란다 앞에 멀어져가는
다도해가 있다. 따가운 喉頭音을 남겨두고 나가는 배; 그대를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를 지나쳐왔다. 격정 시대를
뚫고 나온 나에게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지루한 것이었다.
맞은편 여관 네온에 비추인 그대 속눈썹 그늘에 맺힌 것은
수은의 회한이었던가? "괴롭고 달콤한 에로스";
신열은 이 나이에도 있다. 혼자 걸린 독감처럼,
목 부은 사랑이 다시 오려 할 때 나는 몸서리쳤지만,
이미 山城을 덮으면서 넓어져가는 저 범람이 그러하듯
지금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대는,
이삿짐 트럭 뒤에 떨궈진 생을 두려워하지는 않는지.
신화와 뽕짝 사이 사랑은 영원한 동어 반복일지라도
트럭짐 거울에 스치는 세계를 볼 일이다.
황혼의 물 속에서 삐걱거리는 베키오 石橋를
그대가 울면서 건너갔을지라도
대성당 앞에서, 돌의 거대한 음악 앞에서
나는 온갖 대의와 죄를 후련하게 잊어버렸다.
나는 그대 앞의 시계를 보면서 불침번을 선다.
그대 떠나고 없는 마을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새벽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
동경은 나의 소명받은 병이었다. 지구 위에 저 혼자 있는 것 같아요,
라고 쓴 그대 편지를 두번째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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