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 things, they say, never last




끝을 더듬다

-최문자


언제부터 이 크트머리에 와 서 있었을까?
힐끗 돌아만 봐도
여기저기서 날 버리고 끝낸
삶은, 끝의 흔적일 뿐.
벌판을 누비다 우뚝 멈춘
민감한 들짐승의 꼬리 끝 같은 그 쓸쓸함
참을 수 없어
어느 날,
땅끝마을로 갔다.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땅은 거기서 끝기고
나는 칡머리산 사자봉에 올라
양섬 사이의 일출을 어둠 속에서 기다렸다.
어떤 사랑도
처음엔 저렇게 반짝였겠지.
처음을 뭉턱뭉턱 잘라내면
처음의 새살이 자꾸 자라서
저렇게 영롱한 처음이 다시 떠오르는 줄 알았겠지.
처음이 앉았던 자리에
사라질 일만 남은 배배 마른 끝이
처음의 저 북쪽 창가에
뼈도 살도 다 내놓고 같이 앉아 있었던 일,
까맣게 몰랐겠지.
반짝였으면,
정말 사랑했던 마지막 여자처럼
끝이 반짝였으면,
아직도 묵묵부답인 끝을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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