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두바이 현지 시각 8시 15분 (취리히로 가는 비행기 탑승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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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내 옆에 사람이 없다. 정확히는 왼쪽에만 앉아있고 우측은 빈 공간이다. 2인석 자리의 통로 자리를 잡았다. 이 빈 공간에 승무원이 서있는 까닭에 승무원의 뒷태를 강제로 감상해야 하는데 그냥 빨리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다. 라고 쓰는 순간에 승무원이 사라졌다.

이거 뭐지? 이번 여행은 내가 바라는데로 되는건가?

내 앞자리에 테이블을 펴는 레버가 양쪽에 나사가 박혀있어서 고정되어 있다. 강당의 책상처럼 옆에 팔걸이에서 책상이 나오도록 되어있는 의자라서 일부러 고정시켜 놓은 듯 하다. 옆에 앉은 귀여운 소녀에게 "우리 자리 앞에 있는 테이블은 못 펴게 고정시켜놨어"라고 말하니까 "무슨 소리야?" 이러면서 가볍게 나사를 힘으로 이겨내고 레버를 돌려 테이블을 펴주었다.

나는 힘없는 동방의 작은 남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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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위스 소녀는, 내가 몽트뢰 가서 프린스 공연보고 베를린 간다고 얘기했는데 레너드코헨이 누군지 모른다. 그래서 이 소녀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기로 했다.

출발할 때부터 줄곳 밤이었는데 비행기를 타려고 셔틀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두바이의 바깥세상을 3분 정도 경험했는데 날씨가 매우 따뜻하고 맑았다. 매트릭스에서 네오와 트리니티가 처음 구름위로 올라갔을때 감동했을 때 처럼 햇빛이 창살 가득 내리 쬐니까 기분이 한결 낫다.

여기에 커피 한잔을 하고 싶다. 보통의 커피...

두바이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음악을 듣지 않을 때, 끊임없이 Almost Blue라는 노래를 중얼 거렸다. 엘비스코스텔로가 만들었고, 쳇베이커가 재즈스탠다드로 승화시킨 명곡, 비록 다이애나크롤 버전을 듣고 원곡을 찾아듣긴 했지만…

하지만 날씨가 맑으니 좀 밝은 노래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러다가 결국 레너드코헨이나 들을 게 뻔하지만.

3

다행히 아까보다 컨디션이 나아진 것 같다.

취리히에서 몽트뢰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커다란 창가 가득 햇살을 받으면서 스위스의 푸르른 풍경을 바라보면서 창밖을 넋놓고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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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는 왜 나란 사람이 여행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지를 보여주는 체험기가 될 것이다. 나는 이미 만 24시간 넘게 샤워를 못한 탓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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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시간쯤 자다가 일어나보니, 조식을 나눠주고 있다. 사실 두바이행 비행기에서 조식을 먹었고, (현지시각으론 새벽 3시쯤?) 공항에서 현지시각으로 7시쯤 핫도그를 하나 먹었으니까, 지금 조식을 세번째 먹는 거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3번의 기내식 중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것 같다.

내 옆에 앉은 스위스 소녀는 여전히 우측 팔걸이에 내장되어있는 테이블 대신에 못으로 고정되어있는 레버를 힘껏(!) 돌려서 앞자석 뒤에 붙어있는 테이블을 펴놓고 식사를 했다. 뭐지, 얘 진짜 무서워…

스위스 현지시각으로 9시를 향해 달려가는 중, 도착시각은 1시 반이다. 맑은 날씨의 스위스가 날 반겨줬으면 좋겠다.

골뱅이 안경을 집어넣고 다시 렌즈를 착용하고, 멋진 뿔테를 장착했다. 다시 멋었어 졌다. 스위스 미녀를 꼬실 확률이 50배 높아졌다. 0.000001%에서 0.00005%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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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3시간 전

나는 나쁜 버릇이 하나 있는데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고 걱정만 하다가 막상 일이 닥쳤을때 성급하게 찾아본다는 거다. 이게 다 스마트폰의 발달 탓이기도 한데.. 사실 취리히 공항에 도착해서 어떻게 해야 기차를 탈수 있고 어떤 기차를 타야하는지 완전히 습득하지 못했다.

여행객을 위해서 어련히 잘 배려해놨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지금 타고 있는 내 비행기 좌석에 콘센트가 달려있는데 황당하게도 모든 콘센트 겸용인 것처럼 구멍이 뚫려있는데 220V 플러그를 꼽으면 안들어간다. 자세히 보니 110V라고 쓰여져있구나. 노트북을 100% 충전해 놓을 수 없으니 마음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열차 안에서도 집필(?) 활동을 해야하는데 뱃터리가 버텨줄 수 있을지? (현재 55% 남았구나) 이러다가 유스호스텔에서마져 충전하기 여의치 않은 상황이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개인용 방이 아니다보니 분명 6~8인실에 침대 옆에 각자가 쓸 수 있는 콘센트가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

쓸데없는 걸 못할까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 나란 인간이.. 5000미터 상공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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