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member meeting U here in the good ol'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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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드라마 보면 그 전편을 안본 사람들을 위해서 줄거리 요약해주고 그런게 있는데 나도 전편 요약본을 써야겠다.. 그나저나 나도 여행기를 쓰다보니 무슨 드라마 쪽대본 쓰는 작가 같아졌다. 근데 뭐 나의 몽트뢰 여행기는 딱히 그럴싸한게 없는데… 다들 드라마를 원하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좀처럼 드라마는 일어나지 않아.. 다들 알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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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세줄요약

산넘고 물건너 바다건나서 스위스 취리히 공항 도착
취리히 공항에서 기차 타고 다시 몽트뢰 도착
몽트뢰 도착해서 다시 열차같은거 타고 숙소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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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온 시각은 9시쯤이었던 듯 하다. 아니 8시쯤이었나? 그게 뭐 그리 중요하진 않고 어쨌든 태양이 매우 강렬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몽트뢰의 기후를 잘못 파악한 나머지 짧은 반팔 위에 긴팔 후드티를 걸쳐 입었는데, 밖에 나서니 별로 춥지도 않았을 뿐더러 약간의 몸살 기운때문에 진땀까지 났다.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탓에 호숫가를 따라 걷기로 했다. 사실 발 한바자국 한발자국을 뗄떼마다 몸에서 열이나고 머리가 어질어질 했는데, 여기서 프린스 공연을 앞두고 쓰러질 수 없어서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프레디머큐리 동상까지만 걸어가기로 했다. 첫 사랑 프레디머큐리의 얼굴을 보면 기운이 좀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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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는 매우 아름다웠으나 내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내 카메라 속에는 그저 그런 호숫가만이 들어왔는데, 혹시 내가 정말로 아름답지 않은 호수를 보고있는데 신기루처럼 눈의 착각이 일어난건지… 아니면 카메라 성능이 나쁜건지.. 아니면 내가 수평을 못 맞춰서 그런건지… 어설픈 사진 실력에 어설픈 카메라로 이 웅장한 광경을 찍으려고 했던게 애초부터 글러먹은 거였을까?

난 어차피 사진을 찍으러 간건 아니었을니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이렇게 나의 스위스 여행 목적은 의도했던 대로 콘서트 외에 다른 것은 모두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수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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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맵으로 프레디머큐리 동상을 찍어놓고 30분을 걸었다.

망할 구글맵… 분명히 도보 15분이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20시간의 비행과 5시간의 열차 여행으로 매우 지쳐있고, 일반인들보다 짧은 다리 길이… 그리고 레만호수의 아름다움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나의 느긋한 성미를 감안하지 않았걸테지…

걷다보니 뭔가 시끄러운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이 왁자지껄 하길래 뭔가 봤더니 하이네켄에서 천막을 쳐놓고 술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프레디머큐리 동상이 서 있었다.

하이네켄의 시끄러운 천막과 그 주위에서 프레디머큐리 동상에 예의없이 포옹하면서 사진찍는 풍경을 보니 왜 총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은 왜 프레디머큐리에게 잠시의 휴식도 주지 못하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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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머큐리의 영혼이 하이네켄의 상혼(이 단어가 맞나?)과 거대 유럽 여인들에게 능욕당하고 있는 동안 나는 비행기에서 내린 이후로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두둥!

여행 계획을 전혀 짜지 않았던 나 인간 박희봉이 유일하게 몽트뢰 현지 예습을 한 것이 있다면 몽트뢰 현지에서의 패스트푸드점 검색…

나는 프레디머큐리 동상 근처에 맥도날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한국을 벗어난지 30년, 아니 30시간 만에 처음으로 당당하게 허리를 곳게 펴서 170이 약간 안되는 키를 만들고 맥도날드의 문을 힘껏 그리고 부드럽게 박차면서 밀고 들어갔다. 하지만 점원이 나를 향해 봉쥬르라고 말했을때 나의 머리는 하얘졌다. (정확히 뭐라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으니 일단 봉쥬르라고 하자.. 이게 바로 문학에서 말하는 시적허용? 응?)

왜 "메이 아이 헬프 유"나 "왓 캔 아이 두 포 유?"라고 말하지 않는거지?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켜야할 거 아냐? 뻐킹 프렌치…

결국 나는 메뉴판에 있는 치킨윙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매우 배가고픈 표정을 지어야 했는데, 배고픈 연기를 한게 아니라 실제로 배고픈 사람의 표정을 보여줬으므로 점원은 환하게 웃으며 음식을 내주었다. 나는 KFC의 치킨박스 정도를 생각했던 음식은 담배값만한 크기의 작은 종이상자에 담긴 치킨윙 5조각… 그 작은 크기에 당황했으나 마치 저녁을 먹고 후식을 먹는 사람의 여유로운 표정을 억지로 만들며 테이블에 앉아 3초만에 음식을 모두 입으로 밀어넣고 여유롭게 물티슈로 손과 입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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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머큐리의 기상과 맥도날드의 짜고 시커멓게 탄 치킨윙 다섯조각, 그리고 생수로 인해 약간의 삶의 기운을 얻고 나서 다시 길을 나섰다.

"모르도르까지 이제 300키로… 사우론의 눈을 피해 이 반지를 버릴 수만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여정을 끝낼 수 있겠지…"

눈을 떠서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프로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건너온 박희봉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호숫가를 따라 걷는데 재즈페스티발 근처라서 그런지 여러 천막들이 마치 모란시장 4일장에 온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몽트뢰재즈페스티발 공식 기념품 가게에서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들(싸고 가벼운 것들 위주로)을 잔뜩 긁은 다음에 프린스의 공연장이 될, 몽트뢰 재즈페스티발의 메인 공연장인 오도토리움 스트라빈스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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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가 가까운 시각이었으므로 아마도 그날의 아티스트의 공연은 이미 끝나있었고, 나는 메인홀에 위치한 기념품 가게에 들어섰는데 프린스 티셔츠와 포스터를 발견했고는 기절…

10분후



나는 그 티셔츠 2장과 포스터 3장을 들고 있었다. (포스터를 왜 3장을 샀냐고? 한장은 방에 붙일 용도, 하나는 분실 방지 용도… 하나는 분실방지용 포스터가 파손될때를 대비한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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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나는 프린스의 공연 3회를 맞이할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이다.

스무시간의 비행기과 다섯시간의 기차를 타고 몽트뢰에 도착 후 숙소를 무사히 찾아갔으며, 숙소에서 프린스의 공연장인 오도토리움 스트라빈스키의 위치까지 찾아내었으니.. 그리고 미리 포스터와 티셔츠를 구입함으로써 공연날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는 4척 기럭지의 상큼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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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든 것을 끝내고 내 스스로가 너무 자랑스러웠던지 돌아오는 길에 열차를 타고 한정거장 더 가는 바람에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30분을 걸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보니 프랑스 커플이 침대를 하나씩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베를린에 간다는 얘기를 하니 자기네들이 베를린에서 1년 거주한적이 있다고 하면서 베를린에서 갈만한 곳을 소개시켜준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웃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내 몰스킨 수첩과 펜을 내주었고 친절하고 선량한 웃음을 내비치던 그 프랑스 남자는 테이블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며 3페이지에 가까운 갈만한 곳을 적어주었다.

물론 나는 수첩을 받은 후에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 이후로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손글씨가 예쁘지 않아서...

희봉

2013.08.05 00:45:00

예쁘지가 않으면 일단 보기가 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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