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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훵크 음악을 디벼주마 -8-

2002.8.12.월요일
딴따라딴지 훵크 전도사 박희봉

 

안녕하신가.  딴따라딴지 독자 열분덜.

4주동안 잘 지내셨는가? 열분들은 피서다 뭐다 해서 놀러들 다녀오셨겠지만 도청 잡무에 바쁜 본 기자, 피서는 커녕 휴가도 없이 더운 여름을 간신히 버텨 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기사를 펑크 내지 않기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기사를 썼건만, "분량이 많으니 자르겠소"라는 무시무시한 협박멜을 받고 폭우가 쏟아지는 지금 땀삐질삐질 흘려가면서 이렇게 기사를 수정하고 있다. (편집자 주: 으흐흐...)

사실 지난 기사에서 예고해드렸듯이 이번 기사에서는 프린스와 샤데이, 그리고 Terence Trent D'Arby가 나와야함이 맞지만, 주위의 몇몇 사람들의 충고로 인해 내용이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린다. 뭐 본기자, 이런 충고마져 씹을 정도로 잘나지도 않았고, 고집불통도 아니다. 우쨌든 본 기사는 그런 연유로 인하야 내용이 180도 달라졌으며 앞에서 얘기했듯이 딴따라딴지 편집장의 권유로 인하야 또 한번 내용이 두동강나는 사태가 벌어졌으니, 뭐 팔자려니 생각하고 써내려갈란다. (편집자 주: 크허허허...)

쓸데없는 서론이 길었다.. 각설하고!! 오늘은 그런 연유로 프린스 얘기만 하게 되었다 그거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프린스 특집기사가 되어버린 이번 연재, 함 화끈하게 디벼볼테니 정신들 바짝 차리시라.. 이제부터~ 시이~~작!!

 


  스페셜 특집기사 Prince

야수와도 같은 이 자태...


오늘의 주인공 프린스!! 그는 누구인가.... 80년대에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흑인 뮤지션이다. 설마 프린스가 왜 본기자의 훵크연재에 나오느냐라고 의문을 품는 독자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겠다.

프린스는 "제임스 브라운 - 슬라이 스톤 - 죠지 클링턴"의 훵크 계보를 잇는 네번째 훵크마스터...!

비록 다양한 장르의 혼합으로 인해 순도 100% 훵크 뮤지션으로써의 평가를 그리 잘 받진 못하였지만 프린스 음악의 뿌리는 원초적이고 낼름거리는 훵크록이었고,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여실히 증명이 된다. 딴지는 없을거라고 보고 계속 간다. 흠.

프린스, 그에 대해 무엇부터 나불거려야 할지 본 기자 사실 난감하다. 얘기할게 한두가지가 아니거덩, 이넘은 천재, 아니 괴물이라 못하는게 없다 이 말씀이다.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를 비롯한 25가지 악기를 수족 놀리듯 자유자재로 구사하는가 하면, 수백여곡을 지 꼴리는데로 작사 작곡하며, 지 노래는 지가 다 만드는 건 말안해도 콩떡이고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뿌리는데다가, 그것도 모잘라 창고에 수백여곡의 미발표곡이 들어있다고 자랑을 해대기도 한다. 

작사, 작곡, 연주에도 성이 안찼는지 프로듀스까지 지가 해버리는데 앨범을 하나 낼라치면 몇개월동안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혼자 다 끝내고 돌아오는, 그런 무시무시한 완벽주의자이자 일벌레였다. 그런고로, 그의 앨범 뒷구녁에 박혀있는 요 글귀는 실로 결정적 문구가 아닐수 없다.

"Produced, Arranged, Composed, & Performed By Prince" ; 그래, 씨바야 니혼자 다 해먹어라.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천재로서의 재능을 그리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기인으로 낙인찍어버렸다. 작은 키에 짙은 화장 그리고 높은 굽의 구두, 기타를 혓바닥으로 핥아먹고, 백댄서와 민망한 퍼포먼스를 구사하며, 시상식에서는 짧은 소감만을 발표하고 인터뷰에서 알송달송한 말만 늘어놓으며 기자들을 멍하게 만드는 그런 기인말이다. 언론은 그의 스캔달에만 관심을 가졌고, 사람들역시 이번엔 프린스가 어떤 돌출행동을 할까에 말초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상당수 독자열분들도 이렇게 프린스에 대한 오해 또는 편견을 가지고 있을거라 사료된다. 하지만 이제부터 프린스의 음악 행로를 차근차근 곱씹어가보도록 하자. 프린스를 보는 무지의 선글라스를 벗어제끼고 말이다.

프린스 로저 넬슨, 이넘은 '왕자'라는 쪽팔린 이름을 가지고 1958년 미네아폴리스에서 태어났다. 혹시나 Prince가 그룹명이거나 예명이라고 생각했었던 독자열분들에겐 이게 실명이라는 사실이 상당한 반전일 거라 사료되는 바이다. 암튼, 이넘의 태생을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그는 미국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잡종교배의 산물인데 아부지는 이태리산 흑인이라 전해지고 어무이는 인디언+백인이라고 한다. 그의 음악이 왜 흑백 경계가 모호했는지 어느 정도 해답이 보이는 듯 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되므로 대충 넘어가도록 한다. 간략하게 요약해주자면 별로 유쾌하지는 못한 10대 시절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린스는 음악에대한 집념하나만은 대단했는데, 이무렵 독학으로 20여가지 악기를 마스타하고 작곡 작사 프로듀싱 능력을 기르게 된다.

그리고 20살 되던 해 영국 뮤지션 크리스 문 이라는 넘의 도움으로 드디어 거대음반회사인 '워너브라더스' 와의 계약을 채결하기에 이르는데 한가지 주목할 것은 프린스가 20살의 신인뮤지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 완벽한 통제권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마빈게이나 스티비원더같은 넘들도 10여년가까이 지나서야 자신의 음악에 대한 통제권을 따낸 것을 떠올려 보면 , 이넘이 깡  하나는 분명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 깡인지 실력에 기반한 자신감인지 분간이 안갔을 그 무렵, 결국 혼자 북치고 장구치던 첫번째 앨범이 발매된다.

78년 발매된 프린스의 첫 앨범 타이틀은 <For You>였다. <Soft & Wet>이라는 곡이 싱글챠트에서 비실거리며 들락날락 한것 말고는 그다지 주목할 만한 건 없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데 바빴는지 음악은 삼삼한 그런 수준이었다. 결국 프린스 첫 작품의 성적은 흥행참패로 이어지게 된다. 두번째 앨범은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 <I Wanna Be Your Lover>라는 곡이 1위를 기록하며 앨범 판매고를 50만장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 앨범역시 프린스라는 이름을 팝매니아들에게 각인시키기엔 부족했고, 엉뚱하게도 요 앨범에서 정작 명곡은 후에 샤카칸이라는 아줌마 뮤지숑이 리메이크해서 빌보드챠트 정상을 낼름 먹었던 <I Feel For You>라는 곡이었다.

프린스의 첫번째 역작 <더러운 마음>

기존의 흑인음악과 별 다를 것이 없던 1,2집을 뒤로하고 80년이 되던 해, 프린스는 전혀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훵크+일렉트로+록 등이 마구 섞인 3집 <Dirty Mind>였다. 에 앨범부터 평론가들은 거침없이 내뱉는 이 흑인 뮤지션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였지만 상업적 실적은 정반대였다. 온갖 더러운 가사와 난해한 음악이 난무하는 덕분에 이 앨범은 전혀 홍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일렉트로 훵크 뿐만 아니라 얼터네티브 명반 순위에 당당히 그 이름을 낑겨넣는 프린스의 대표적인 마스타피스가 되었다.

음악듣기 - Dirty Mind

그리고 <더티 마인드>에서 시작된 그의 훵크 실험은 82년 되던 해 발표되었던 2장짜리 LP <1999>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었다. 반복적인 리듬커팅이 독보이는 타이틀곡 <1999>를 비롯하여, 록앤롤 명예의전당에 올라간 '프린스표' 끈적록넘버 <Little Red Corvette>을 위시한 본능적이고 낼름거리는 무한반복 훵크넘버들이 앨범 전체를 또 하나의 걸작으로 만들어 주었다. 앨범은 200만장을 웃도는 판매고를 기록하였으며 프린스는 드디어 미국내 슈퍼스타가 되었다.

음악듣기 - 1999

그리고 1984년 프린스 인생에도 연타석 봄날이 오고 있었으니, 바로 다름아닌 <퍼플레인>의 발매가 바로 그것이다. 프린스 하면 떠오르는 요 앨범 <퍼플레인>... 아마 열분들도 흑인음악이나 훵크에 무관심하더라도 요 앨범을 소장하거나 아는 분이 상당수 계시리라 사료된다. 왜냐구? 당빠 제일 많이 팔린 대박앨범이니까.

이 앨범의 힛트 퍼레이드의 포문을 연 것은 <When Doves Cry>라는 희한한 곡이었다. 이 곡은 베이스 라인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보컬 멜로디와 드러밍 하나만으로 곡을 만들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리듬감은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넘실댔으며, '니는 내 엄마를 닮았네~ 나는 내 애비를 닮았네~' 하는 프린스의 주절거리는 후렴구 멜로디는 중독성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이 곡은 당시 롱런 힛트가 힘들었던 빌보드 챠트의 구조상에서도 5주연속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넘은 요즘 8000원에 살수 있다.

하지만 앨범은 요곡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빌보드 챠트 2주 연속 1위에 빛나는 훵크록 넘버 <Let's Go Crazy>가 앨범이 힛트 퍼레이드에 가속을 붙였고, 뭔가 있어보이는 가사 문학과 뽀대나는 기타 연주가 멋들어졋던 <Purple Rain>이 챠트 2위를 거머쥐며 앨범 <Purple Rain>은 무려 24주동안 빌보드 앨범챠트 1위를 내놓지 않았다.

음악듣기 - When Doves Cry

<퍼플 레인>의 성공으로 프린스는 전 세계적으로 그의 신도들을 결집하였으며, 넘치는 창작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위의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곡을 주어 챠트를 거머쥐게 하여 빌보드 챠트를 '프린스 판'으로 만들며 80년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한다. 프린스의 이런 엄청난 성공은 언론으로 하여금 마이클 잭슨과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둘은 80년대 내내 비교대상이었는데, 상업적 실적이나 인기는 M모씨가 우세했고, 음악성으로 따져보면 P모씨가 우세했다. (알파벳 이니셜은 실제 아티스트의 이름과 절라 관련있음)

오빠부대를 몰고다니던 그때 그 시절..

이제 프린스와 그의 팬들에게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공의 방법이었는데, 그 방법은 두 말할 나위없이 '퍼플레인' 이었으며 사람들은 그가 제2의 퍼플레인을 들고 나타나길 예상했으며, 또한 바랬다. 하지만 프린스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아티스트가 아니었으니... 퍼플레인 이후 2장의 앨범에서 그것을 100% 증명해 보이게 된다.

85년 발매된 <Around The World In A Day>와 86년도에 발매된 <Parade>는 각각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아트록적인 사운드를 들고 나왔고, 당빠 퍼플레인적인 요소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천만장을 넘겼던 퍼플레인과는 비교될수 없을정도로 초라한 수준의 앨범판매고와 팬들의 실망, 그리고 언론의 공격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앨범은 전혀 초라하거나 수준이하의 앨범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퍼플레인의 후속작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필요 이상으로 천대 받았다. 단지 <Parade>에서 배설되었던 80년대 최고의 댄서블 넘버중 하나인 <Kiss>가 챠트1위와 그래미상을 거머쥐며 나홀로 반짝 거릴 뿐이었다.

음악듣기 - Kiss

그리고 1년 후, 87년 그동안 이끌었던 백밴드 <Revolution>을 해체해 버리고 다시 혼자 모든 걸 해치우기로 결심한다. 다시 한번 혼자 북치고 장구치던 앨범이 하나 나오게 되는데 바로 프린스의 4번째 명반이라 할수 있는 2장짜리 앨범 <Sign "O" The Times>가 바로 그것이다.

프린스는 이 앨범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보여주는데 성공했는데, 특히 훵크, 소울, 록, 블루스, 가스펠 등을 아우르는 장르의 혼합을 완벽하게 자신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녹여내었다. 그동안 온갖 장르를 가지고 비비고 볶으며 실험을 해왔던 그가 드디어 이 앨범에서 프린스 훵크록의 집대성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네번째 걸작 앨범 - 사인 오 더 타임즈

음악듣기 - Sign "O" The Times

그리고 앨범 커버에 자신의 누드를 박아놓아 말썽거리만 일으켰던 10집 <Lovesexy>와 팀버튼의 컬트영화 배트맨의 사운드트랙을 맡아 챠트 1위를 거머쥐었던 <Batman O.S.T>를 뒤로 하고 프린스의 전성기였던 80년대가 흘러가고 만다.. 그리고 프린스에게 고난의 시기였던 90년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90년대에 그가 처음으로 발매한 앨범은 <Graffiti Bridge>. 컴필레이션 성격이 짙은 이 앨범에서 프린스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훵크의 마왕 죠지 클링턴, 80년대 슈퍼훵크 밴드 The Time, 가스펠가수 Mavis Staples, 미모의 섹소폰연주자 Candy Dulfer 등이 기용하였는데, 결과는 흥행참패로 이어졌다. <Thieves In The Temple>이 싱글챠트에서 고군분투 할 뿐이었다. 오히려 이 앨범에서 발굴된 천재 보컬리스트 Tevin Campbell이 제2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기타로 폼재고 있는 최근의 프린스

그리고 그는 90년대이후 내내 그의 백밴드의 명칭이 되었던 <New Power Generation>을 결성하고 91년도 <Diamonds & Pearls>를 발매한다. MTV뮤직비디오 어워드와 빌보드챠트 1위를 석권했던, 제목부터 느끼한 <Cream>과 뚱땡이 여자보컬 로지 게인즈와 듀엣으로 챠트 2위에 올랐던 <Diamonds & Pearls>, 그리고 또 하나의 챠트 2위곡 <Gett Off> 등 힛트곡들이 쏟아져 나온 이 앨범으로 그는 다시 한번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음악듣기 - Cream

1년후 그는 다시 New Power Generation과 함께 <The Love Symbol> 이라는 앨범을 내게 되는데, 전작 다이아몬드와 진주에 비해 상업적인 성적은 초라했지만 앨범은 내공이 뛰어는 넘버들을 다수 보유 하고 있었다. 그의 앞날을 예견이나 한듯한 제목의 <My Name Is Prince>와 하드코어 훵크 넘버인 <Sexy M.F.> 그리고 싱글챠트 7위를 기록한 <7> 등이 이 앨범에서 힛트하였으며, 앨범은 그가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마지막 수작으로 기억되었다.

음악듣기 - Sexy M.F.

이무렵 프린스와 프린스의 창작 활동에 간섭을 해왔던 워너브라더스사와의 갈등이 노골화되기 시작하는데, 프린스는 주체할 수 없는 창작욕을 다스리지 못해 일년에 5장 남짓한 앨범을 발매하길 원했고 워너는 상업적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 1년에 한장의 앨범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사실 87년도에 발매된 사인 오 더 타임즈 역시 3장짜리로 계획된 것이었으나 워너레코드의 간섭으로 2장짜리로 변경된 것이었다.

하지만 프린스는 이 당시 이미 워너브라더스사와 앨범 10장을 내기로 계약을 채결한 상태였다. 계약에 묶여버린 프린스는 별다른 해법이 없었다. 결국 프린스는 자신을 죽이는 것밖에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1958년에 태어나 1994년에 죽었다는 의미를 내포한 <Come 1958-1994>가 발매된다. 자신이 죽었음을 선포한 요 앨범은 상당히 어두운 음악들이 앨범을 채우고 있는데, 평론가들은 프린스가 워너브라더스와의 앨범 잔여계약을 매꾸기 위해 쓰레기같은 앨범을 내놓았다며 혹평을 해버렸다.

죽었으니 Prince라는 이름을 쓸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 그리하여 그는 새로운 이름을 기호로 쓰기로 마음먹는다.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기호를 합쳐놓은 이넘의 심볼은 발음조차 할 수 없어 수많은 팬들과 기자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 기자들은 프린스에게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질문했지만 프린스는 '부르지 마라' 라고 대답해버리는 깡을 발휘해버린다.

요것이 바로 그 심볼이다.

이 무렵부터 프린스의 행보는 오직 워너브라더스 레코드로부터 해방되는 것에 집중 되어있었다. 앨범의 발매는 오로지 잔여계약을 채우는 것이었다. 이때 힛트곡 모음집 1,2에 B-Sides모음집 그리고 87년도에 낼려다 폐기처분했던 <Black Album> 그리고 기존의 곡을 짜집기해서만든 스파이크리 감독의 <Girl 6>의 O.S.T.등등 앨범을 무성의하게 발매하였으며 당연히 상업적 실패와 대중들에게서 멀어진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공연장에서 공공연히 워너브라더스를 성토하는 발언을 일삼았으며 뺨에는 워너레코드의 노예라는 뜻으로 Slave를 쓰고 다녔다. 그리고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아메리칸 뮤직 어워도 공로상 시상식에선 워너브라더스에 대한 고소장을 들고나와 읽는 등 그에게 워너브라더스에 대한 투쟁은 거의 전쟁 수준이었다.

Sale이라고 쓴 줄 알았더니 Slave 라네.

지긋지긋한 워너브라더스와의 투쟁을 97년 앨범 <Chaos & Disorder>로 말끔히 날려버리고 드디어 해방이 된 프린스는 97년 겨울 <Emancipation>을 발매한다. 무려 3시간의 러닝타임속에 러브,섹스,자유의 주제로 불러재낀 36곡짜리 3CD-Set인 요 앨범은 90년대 말 프린스의 마지막 역작이었으며 뚜렷한 싱글챠트 힛트곡없이 200만장을 돌파해버리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 무렵 <Jam Of The Year>세계 투어를 하며 그해 콘서트 수입 2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워너브라더스와의 투쟁기간동안 그가 실제 얻은것은 없었으며 남은 것이라곤 날려버린 세월과 한물간 음악성이었다. 이후 꾸준히 1년에 1장 이상의 음반을 내곤 있지만 과거 그가 보여줬던 혁신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99년 그웬 스테파니, Eve, 애니 디프랑코, 메이시오 파커, 쉐릴 크로우, Chuk D.,래리 그래험을 불러들여 야심작 <Rave Un2 the Joy Fantastic>을 발매하였지만 변변한 힛트곡 하나 내지 못하고 참패를 기록하는 등 근래 프린스는 한마디로 삽질의 연속이었다.

기타까지 심볼모양으로 만들었던.. 프린스..

현재 그는 세월속의 아티스트가 되어 과거의 훵크 마스타들과 잦은 교류를 하며 과거로 회귀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할수 있겠다. 매년 그의 생일이 되는 주엔 그의 집이자 스튜디오인 <페이즐리 파크>에선 작은 파티가 벌어진다. 그리고 수많은 게스트들이 출연하는데 그가 존경하던 래리 그래험, 메이시오 파커, 조지클링턴에서부터 그를 존경하는 레니 크라비츠, 메이시 그레이, 커먼, 알리시야 키즈, 에리카 바두, Musiq, 앤지 스톤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초월한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축제를 빛내주곤 한다.

피아노 앞에 앉을수 있는 한 결코 자신의 칼날이 무뎌지지 않을거라는 자신감또는 오만을 가지고 있었던 팝계의 저항아 프린스, 이제 그의 칼날은 이제 더이상 팬들을 흥분시키진 못한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음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꼴리는 데로 살아가는 넘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80년대 중후반 인기가 있었던 것은 그의 그런 음악이 시대적 요구와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티스트에게 그런 시절은 전성기라 불린다. 그의 음악이 또 한번 시대적 취향과 맞아 떨어질지는 의심스럽지만, 아직 그가 음악활동을 접지 않았으므로 본 기자, 속는 셈 치고 그를 지켜보겠다. 왜냐면...

프린스는 누가 뭐래도 프린스다.


본 기자는 이번 기사에서 독자열분들이 프린스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들을 버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가 비록 기인적인 행동을 하고 다닌 것은 틀림없으나 이런 행동이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가려선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울나라에서 그에 대한 인식은 느끼한 변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런 사람들은 프린스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며, 아예 그의 음악을 듣는 것 자체를 기피한다. 뭐 프린스 면상만 봐도 어제먹은 라면이 생라면으로 꾸역꾸역 올라온다면 더이상 할말은 없겠지만, 적어도 편견이 있다면 (특히나 근거도 없는...) 한번쯤은 그런 색안경 벗고 이 아티스트를 감상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럼 이만 마친다.  이상!!


프린스 빠돌이임이 만천하에 드러나버린
딴따라딴지 훵크 전도사 박희봉mailto:heebong@heebong.com


딴지일보는 가는으뜸체로 최적화 되어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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