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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훵크 음악을 디벼주마 -7-

2002.7.15.월요일
딴따라딴지 훵크전도사 박희봉

 

안녕들 하신가.

졸라 오랜만이다. 아시다시피 월드컵 기간동안 2주 넘게 월드컵관련 기사 때문에 딴따라딴지가 쉬는 바람에 3주마다 여러분을 찾아뵈어야 하는 본기자,  이렇게 늦게 인사올리게 되었다. 본 기사의 전편인 훵크연재 6편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하는 넘 혹시 있나? P-Funk스페샬 1탄이었단다. 다라서 오늘은 그에 이은 2탄이 되어야 하는건 당연빠따. 

사실 P-Funk 스페샬은 한편으로 제작되었으나 분량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기사를 두동강 내버리는 딴따라딴지 편집부의 만행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2부로 나누어 선보이게 되었다. 독자열분들 기억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꼭 지난편을 참조하시길 바라는 바이다. 왜냐면 오늘 소개해주는 넘들이 바로 P-Funk사단의 밴드들의 핵심멤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요 기사만 달랑 보는 행위는 퀸도 모르면서 프레디 머큐리를 연구하는 작태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자 그럼 P-Funk 핵심멤버들 나가신다~!!


George Clinton (1940 ~ 아직 정정하심)

아직 정정하다니깐...


P-Funk를 이끌었던 훵크의 신이자 마왕이라 불리는 죠지 클링턴..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가 없었다면 P-Funk는 물론 훵크 음악 자체가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훵크 역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은 엄청나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로써도 두개의 팀을 동시에 계속 끌어나간다는 것은 음악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무리였고, 결국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 시작은 바로 82년도에 발매한 <Computer Game>이었다.

죠지 클링턴 솔로 활동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요 앨범은, 사실 구지 따지자면 솔로 앨범이 아니다. 왜냐면 부치 콜린스를 비롯한 수많은 P-Funk사단이 고스란히 이 앨범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변화가 있었다. 

드럼머신의 사용과 신디사이져 사운드의 강조가 바로 그것이었다. 덕분에 이후 Hip-Hop 씬에서 수도 없이 샘플로 사용되개 된다. 특히 <Atomic Dog>는 방송을 전혀 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알앤비 챠트 1위를 거머쥐었고, 후에 수많은 힙합 아티스트들로부터 샘플링화되면서 고전으로까지 자리잡고 있는 곡이다.


음악듣기 - Atomic Dog ; 힙합매니아들에게 졸라 친근할걸.


죠지 클링턴은 80년대 새로운 훵크밴드인 'P-Funk All-Stars' 를 결성하고 끊임없는 음악활동을 벌이게 된다. 이후 레드핫칠리페퍼스와 같은 훵크록커들의 앨범을 프로듀스해주기도 했으며, 8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Prince가 이끄는 '페이즐리 파크' 레이블과 계약을 채결하고 앨범을 내기도 했다. 후에 프린스가 주연한 3류 영화 '그래피티 브리지'에 친히 출연하기도 했으며, OST에 프린스와 함께 듀엣곡을 하나 발표하기도 했다. 듀엣곡 제목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함 들어보자.


음악듣기 - We Can Funk (with Prince)


하지만 죠지 클링턴의 진면목은 80년대 부터 불기 시작한 힙합 열풍을 타고 들어나기 시작했는데, P-Funk의 음악이 힙합 아티스트들의 음악작업에 있어서 엄청난 쏘스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고로 죠지 클링턴과 P-Funk사단이 남겼던 거의 모든 곡들이 샘플링화 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물론 수많은 힙합아티스트들의 작업에 죠지 클링턴 그가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다. 좀 오바하고 과장하자면 거의 모든 힙합 관련 아티스트들은 죠지 클링턴의 영향을 직격타로 맞았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임이라. 흘려 듣기론 G-Funk또한 P-Funk의 상당한 영향력아래 태어났다고 들었는데 힙합에 잼뱅이 수준인 본기자인 만큼 이 부분은 힙합 매니아들 각자 알아보시라.


음악듣기 - Can't C Me (feat. George Clinton) ; 
*누가 불렀는지는 국내 힙합팬들의 내공을 믿어보련다.


죠지 클링턴.. '훵크'라는 키워드가 흑인음악사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상 그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거다. 이글 보는 독자열분들, “죠지 클링턴”이라는 이름을 지금 즉시 3만번만 복창하시길 바란다. 단, 색스폰 연주자이자 정치가인 빌 클린턴하고 헷갈리지는 마시고...

  

Bootsy Collins (1951~생존)

요란한 의상에도 불구하고 은은히 내비치는 이 갑빠...

넘실대는 베이스 리프가 없는 훵크 음악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부치 콜린스 없이 감히 훵크 베이스를 논할수 있겠는가?

훵크 베이스의 거두 부치 콜린스는 래리 그래험(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의 베이시스트이자 그래험 센트럴 스테이션의 리더)과 함께 훵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로 손꼽힌다. 하지만 언제나 라이벌 관계가 그렇듯이 그들의 스타일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파워풀하고 다이나믹했던, 다소 거칠었던 베이스 플레이가 래리 그래험의 것이었다면 부치 콜린스는 정 반대였다. 부드럽고, 율동적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래리 그래험이 무지막지한 슬랩 베이스와 퍼즈 베이스로써 그의 훵크베이스 플레이 스타일을 완성시켰다면, 부치 콜린스는 베이스를 여자다루듯 애무했다. 그가 손가락 몇개를 이용하여 줄을 몇번 튕기고 나면, 마법과도 같이 율동적인 멜로디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진정한 훵크 베이시스트였다. 마치 피속에서부터 훵크가 꿈틀대는 것마냥.


음악듣기 - I'd Rather Be With You


부치 콜린스는 아주 어렸을적부터 밴드 활동을 하였다. 그의 형인 Catfish Collins 역시 기타리스트였는데 물론 같은 밴드였다. 피스 메이커라는 밴드였는데, 70년이 되던 해, 그들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겨우 10대를 갓 벗어난 그들에게 제임스 브라운이라는 거물의 백밴드를 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그 당시 제임스 브라운은 그가 지휘하는 밴드 멤버들로부터 수많은 불평과 불만을 들어야 했다. 사실 제임스 브라운은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밴드 운영으로 악명이 높았다. 거의 착취수준으로 돈을 주지 않았고, 멤버들을 심하게 통제하려 했기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임스 브라운의 밴드 멤버들이 떠나게 되고, 그 자리에 부치 콜린스가 이끌던 밴드가 대신하게 된것이다.

제임스 브라운과 콜린스 형제의 첫 공연은 아주 드라마틱했다. 제임스 브라운측에서 백밴드 제의를 받은 밴드 멤버들은 그날 바로 제임스 브라운과 공연을 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화를 받은 그날로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공연장으로 날아갔고, 어떠한 리허설도 없이 제임스 브라운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제임스 브라운의 광팬들이었기 때문에 제임스 브라운의 음악을 거의 다 연주 할수 있었고 결국 완벽하게 스테이지를 소화해냈다. 하지만 부치콜린스는 제임스 브라운과 그리 오래 같이 하지 못했는데,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삶은 제임스 브라운의 스타일에 너무나 안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았던 이 무렵 부치 콜린스와 그의 형 캣피쉬 콜린스가 이루어놓은 업적을 살펴 보면  어마어마 할 정도다. 제임스 브라운의 최고 힛트곡이라 여겨지는 <Sex Machine> , <Soul Power> , <Talkin' Loud And Sayin' Nothin'> 과 <Superbad> 등이 모두 그들 형제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부치 콜린스는 70년대 초반 P-Funk에 참여하게 되고 죠지 클링턴과 함께 최고의 훵크 듀오로 활약하며 주옥같은 명곡들을 만들어낸다. 물론 베이스 연주는 물론이고, 퍼커션, 기타, 보컬 등 다방면에서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70년대 중반무렵 죠지 클링턴의 권유로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채결하고 'Bootsy's Rubber Band' 를 결성하여 앨범을 발표한다. 

물론 밴드의 리더는 부치 콜린스였고, 앨범은 죠지클링턴과 부치콜린스가 주축이 되어 제작되었다. 당빠 P-Funk 사단의 아티스트들이 줄줄이 참여하였다. 하지만 훵카델릭/팔리아멘트의 음악과는 완젼 똑같지는 않았다. 부치 특유의 장난기어린 보컬과 '손대면 툭 터질것같은' 그의 베이스 애무는 부치 콜린스만의 전매 특허였다.

사실 그의 진짜 전매특허는 그만의 패션이었다. 그는 모든 걸 별모양화 하였는데 선그라스는 물론이요, 베이스까지 별모양으로 만들어 연주한 것이다. 그리고 코스츔 또한 화려하다 못해 촌스럽기까지 했다. 독자열분들이 쥐약을 먹지 않은 이상 살아 생전에 절대 못해볼 코스츔... 그걸 그는 평생 하고 댕겼다.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을 훵크라는 페인트로 색칠해버리고 싶었나보다. 

그런만큼 부치 콜린스야말로 음악적으로나 음악외적으로나 P-Funk의 마스코트였음을 부정할수 없을 것이다.


음악듣기 - Munchies For Your Love


Eddie Hazel (1950 ~ 1992)

앞의 양반들과는 좀 다른 우수가 느껴지시는가들...


음악듣기 - California Dreamin' (마마앤파파스의 원곡 리메이크 버전)


Eddie Hazel. 그는 훵크-메탈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P-Funk사단의 기타리스트였다. 그의 기타플레이는 블루스, 록, 훵크 등이 완벽하게 혼합되어 있었다. 특히나 그의 기타 플레이는 광적이고 파워풀는데, 또하나의 지미 헨드릭스라고 부를 만 했다. 만약 죠지 클링턴이 Eddie Hazel을 만나지 않았다면 훵카델릭의 사이키델릭한 록 사운드를 기대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죠지 클링턴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겨우 17세에 불과했던 Eddie Hazel을 그의 밴드에 전격 합류시켰다. 그리고 Eddie Hazel최고의 걸작이라 할수 있는 <Maggot Brain>은 그의 나이가 겨우 21살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크로매틱 연습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본 기자와는 대조되는 뛰어난 재능이다...

하지만 지미 헨드릭스가 그랬듯이 그의 사생활은 혼돈 그 자체였다. 훵카델릭/팔리아멘트에 몸담은지 얼마 되지 않아 마약문제로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켜나갔고, 그가 마약을 사지 못하게 하기위해 돈줄을 조여버린 죠지 클링턴과 나쁜 감정만 쌓아나갔다. 결국 마약 문제로 감옥에 가버리면서 잠시 P-Funk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잠시 Motown의 연주자/작곡가로써 일하게 되는데, 이 무렵 Motown 의 간판 소울그룹이었던 The Temptations와 함께 작업을 하고 한동안 콘서트 투어까지 벌이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가 있어야 할자리를 알았고, 죠지 클링턴을 비롯한 P-Funk사단에서도 그들이 어떤 기타리스트가 필요한지를 느끼고 있었다. P-Funk사단으로 다시 컴백한 Eddie Hazel은 연주, 투어는 물론이고, 죠지 클링턴의 권유에 따라 솔로 앨범까지 발매하는등 활발한 음악 활동을 벌이게 된다.

그 이후 Eddie Hazel은 무난하고도 평탄한 음악 활동을 벌일수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건강은 정반대였다. 불꽃처럼 살다간 여타의 고독한 천재들처럼 하늘은 그를 총애하였다. 1993년 새해가 밝기전, 그의 장례식이 치뤄졌고 그가 남긴 슬픈 연주곡 <Maggot Brain> 이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연상하고 만들었다던 <Maggot Brain> 이 자기 자신의 레퀴엠이 될 줄... 과연 그는 알았을까.


음악듣기 - I Want You (She's So Heavy)



Maceo Parker/Fred Wesley

제임스 브라운과 함께 했던 시절.
좌:Fred 우:Maceo


베이시스트와 기타리스트만 소개하고 Horn 섹션을 빼먹으면 서운하겠지? 글타. P-Funk에서 이 두 사람을 빼먹을 수는 없다. 왜냐면 이사람들은 제임스 브라운, 죠지클링턴이라는 딱지를 떼어버려도 그들 자체로도 충분히 인정받는 일류 연주가들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죠지 클링턴은 졸라리 행운아인 것 같다. 당대 최고의 베이시스트 부치 콜린스와 천재 기타리스트 Eddie Hazel을 얻은 것에도 모잘라 제임스 브라운 훵크의 초 핵심 알맹이였던 요 두사람까지 포섭했으니 말이다. 죠지 클링턴의 P-Funk 사단은 그야 말로 경악의 캡숑 울트라 수퍼 스타 밴드였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겠다. 한마디로 거의 사기에 가깝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피구,지단,베컴,오웬,라울,히바우두,호나우두,트레제게,앙리,바르테즈, 홍명보가 같은 팀에서 뛴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Maceo Parker, 이 양반역시 부치 콜린스처럼 훵크연재 1편 제임스 브라운편에서 소개시켜 드린바 있다. 기억 안나는 독자열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훵키한 섹소폰 연주의 으뜸으로, 제임스 브라운 글고 죠지 클링턴과 함께했던, 즉 당대 최고의 훵크 밴드에서 활약하신 분이다. 메이시오 파커만의 간단하면서도 주체할수없이 신나는 리프들은 죠지 클링턴이나 제임스 브라운으로 하여금 그를 중용할수 밖에 없을 지경에 만들었고, 오죽하면 제임스 브라운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Maceo! Blow Your Horn!!"

Maceo Parker는 몇장의 솔로 앨범을, 특히 90년대 이후 꾸준히 내고 있는데 그는 이 앨범들에서 섹소폰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훵키한 음악을 담아낼수 있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연주가들이 솔로 앨범들을 낼때 자칫 범하기 쉬운 자기 자신만의 악기를 남용하는 사례또한 거의 찾아 볼수 없었다.(신기하게도 P-Funk 멤버들은 모두 그랬다. 부치 콜린스도 그랬고, Eddie Hazel도 그랬다. 그 이유는 그들이 Funk라는 대명제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훵크라는 곧은 길을 꾸준히 걷고 있는 장인들이라고 할수 있겠다.)


음악듣기 - Elephant's Foot


Fred Wesley 역시 제임스 브라운 밴드의 Horn 멤버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차지하는 역활은 Maceo Parker가 밴드에서 차지하는 역활보다 훨신 컸다. 그는 단순한 Horn 연주가가 아니라 제임스 브라운 밴드의 주축이었다. 제임스 브라운 밴드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하자면 그는 숨겨진 지휘자라고나 할까. P-Funk에 참여했을때도 그의 역활은 상당했다. 메이시오 파커와 몇몇의 Horn 연주자들과 함께 The Horny Horns를 결성하여 Parliament에서 시원시원한 Horn 섹션을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류급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참여했는데, 그중 유명한 넘들만 나열하자해도 끝이 없을 정도다. 레드핫칠리페퍼스, 알버트 킹, 어쓰 윈드 앤 파이어, 데 라 쏘울, 나탈리 콜, 조지 벤슨 등등... 우우...


Bernie Worrell

이넘은 P-Funk에서 피아노를 비롯하여 신디사이져, 오르간 등을 연주했던 사람이다. 죠지 클링턴과 함께 곡 작업을 했던, P-Funk내에서 상당히 비중이 큰 인물이라 하겠다. 훵카델릭의 사이키델릭하고 팔리아멘트의 넘실대는 키보드 리프는 바로 이넘이 주범이라 할수 있다. 특히 신디사이져 리프로 유명한 <Flash Light> 역시 이넘이 만든 곡이라 한다. 죠지 클링턴의 음악이 그랬듯이 이넘의 신기에 가까운 키보드/신디사이져 리프들은 후에 수많은 R&B, 힙합 아티스트들이 고대로 배껴가다시피 했다.


특별부록: P-Funk사단 리스트

위에서 소개시켜 드린 넘들은 P-Funk사단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본기자가 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기에 열분들께 설명해드릴수 있었다. 하지만 P-Funk사단을 저 몇명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엄밀히 따져보자면 P-Funk가 죠지 클링턴 혼자의 작품이 아니었듯이, 저 몇명들 만의 작품들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인 거다. 그들은 전체가 하나였고, 하나가 전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두 한데 모여 잼(Jam)을 할때 비로소 P-Funk가 될수 있었다.

P-Funk는 우리가 다같이 만들었어여~!!

여기 P-Funk 사단의 리스트를 보여줄테니, 다음 훵크 연재까지 머리 속에 외워두길 바란다. 쓸데없는 물리공식이나 수학공식같은거 외우는데 시간 허비하지 말고...

Walter "Junie" Morrison, Jerome Brailey, Glen Collins, Gary "Muddbone" Cooper, Raymond Davis, Ron Ford, Ramon Tiki Fulwood, Rick Gardner, Glen Goins, Michael Hampton, Clarence "Fuzzy" Haskins, Tyrone Lampkin, Cordell Mosson, Lucius Tawl Ross, Gary Shider, Dawn Silva, Calvin Simon, Grady Thomas, Greg Thomas, Jeanette "Baby" Washington, Debbie Wright, Shirley Hayden, Billy "Bass" Nelson, Larry Heckstall 

이넘들이 한 무대에서 괴이한 복장을 하고 훵크 잼을 하는 상상을 해보라.. 원더풀 하지 않은가 말이다.  근데 이 떼거지는 좀 심하긴 심했다. 이러니깐 결국 망하지.


스페샬 훵크 기사, P-Funk 시리즈는 이쯤에서 마칠란다. 열분들께서 재밌게 읽으셨나 모르겠다. 나름대로 쉽게 쓰겠다고 노력했는데 글이 안 외닿으면 음악이라도 반복해서 들어보시길 바란다. 또한 기사 쓰는것만큼 곡 선정에도 뼈가 깎이는 듯한 고통이 가해졌다는 것을 알아 주시기 바란다. 수백곡 중에 몇곡 고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더군다나 P-Funk의 음악처럼 뭐라 정의하기 힘든, 그런 음악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는 사실.

여튼 수고 많으셨다. 

그럼 이만. 굿바이 & 굿나잇!!

다음훵크연재 예고 : 미네아폴리스의 작은 거인 Prince, 그리고 이국적인 소울로 사랑받았던 TTD와 Sade... 모두 기대하시라!! 앗싸!


도청에서 스타쉬피스(-_-)한 생활을 하고있는
훵크전도사 박희봉(heebong@heebong.com)


딴지일보는 가는으뜸체로 최적화 되어있슴다.

가는으뜸체가 시스템에 깔려있지 않으신 분은 다운(246KB) 받아 설치하시어 훨 미려한 딴지 본연의 모습을 만끽하시기 바람다.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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