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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훵크 음악을 디벼주마 -6-

2002.6.10.월요일
딴따라딴지 훵크 전도사 박희봉

 

하잇! 에브리 "훵키" 바리~

반갑다 열분들아. 3일 같았던 3주는 어느덧 축구의 열기속에 훌쩍 지나가 버리고, 본 기자 다시한번 열분들 앞에 이렇게... 새로 산 LCD모니터에 해딩까지 하면서 머리 조아리며 인사드린다. 비록 본기자의 훵크 연재가 전지구촌 행사인 월드컵에 의해 조금 시들해진것은 사실이나,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특집기사로써 이 난관을 극복해나가려고 하는 바이다.

그 무기는 다름아닌 P-Funk 스페샬!! 두둥...

저번 기사에서 약속해 드렸다시피 이번호는 본 기자의 훵크 연재에서 감히 하이라이트라고 말하고 싶은 P-Funk 에 대한 소개, 그 첫회가 되겠다. 그러나 P-Funk가 뭔지 몰라서 겁먹을 필요 전혀 없다. 차근차근 기사를 읽어나가다 보면 요넘이 뭔지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 열분들의 음악적 이해 능력이라면 충분히 소화가 가능할거라고 믿는다. 글고 본 기자의 기사가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들어온 고로, 이번호부터는 좀더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해볼테니 이점 알아주시라.. 그래도 모르겠으면 주저하지말고 옆에 있는 연넘들한테 물어보덩가 멜질을 쎄리던가 알아서들 하시라.

자, 렛츠고! Be The Reds!

 

P-Funk의 기원

대마왕 조지 클링턴

이 시점에서 George Clinton 이라는 넘을 열분들께 소개시켜 드려야 할 것 같다.

이 사람은 P-Funk를 창시하고 이끌었던, P-Funk의 수장 쯤 되는 넘인데 훵크의 아부지, or 훵크의 마왕으로 불리우는 실로 대단한 양반이다. 쉽게 말해 제임스 브라운이 만들고 슬라이 스톤이 집대성했던 훵크 음악를 70년대 팝계에 가장 센세이셔널한 장르로 빚어낸 인물이 바로 다름아닌 이넘 죠지 클링턴이라고 보시면 되겠다. 그로 인해 Funk는 팝계를 이끌어가는 주류로써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 양반이 P-Funk의 핵심인물인 만큼, P-Funk의 기원 역시 이넘의 행적(?)을 따라가보면 된다.

때는 바야흐로 1960년대 초... 내일의 훵크 마왕 조지 클린턴은 당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본업보다도 음악에 관심이 더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그 이발소에 밤낮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다녀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고, 이발소 어느 구석에 짱박혀서 음악을 연주하곤 했단다. 당시 밴드 이름은 'The Parliaments' (뒤에 나오는 Parliament 와 헷갈리지 마시라)였다. 암튼 요때 음악은 본 기자도 뭘 했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으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두밥밴드 였단다. 두밥인지 개밥인지, 이 음악이 뭔지 잘 모르는 관계로 넘어갈란다.

60년대 내내 무명밴드 생활을 못벗어나던 와중... 밴드에 새로운 멤버들이 영입되는데 이넘들은 하나같이 껄렁껄렁한 히피족들이었단다. 이 멤버들 덕분에 죠지 클링턴과 그의 밴드는 음악적으로나 음악 외적으로나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P-Funk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옷! 이제부터 시작이다...!

 

Funkadelic (1968 ~ 1981)

P-Funk 떼거지들의 위용

새로 결성된 조지 클링턴의 밴드는 크게 두개로 나눌수 있다. 바로 지금 소개시켜드리는 Funkadelic이라는 밴드와 좀있다 나올 Parliament라는 밴드다. 웃긴건 요 두 밴드의 멤버구성이 거의 같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활동했던 것은 두 밴드의 음악적 차이에 그 원인이 있음이 국내 최초로 본 기자에 의해 밝혀졌다. Parliament가 좀더 P-Funk스러운(?) 음악에 중점을 두었다면, Funkadelic은 Funk에 좀더 록(Rock)적인 요소를 가미한 음악을 했다는 사실이다.

3박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인터넷을 돌아댕긴 결과 Funkadelic이라는 이름역시 'Funk + 싸이키델릭' 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니 이 또한 본지만의 쾌거가 아니리오... 머? 벌써 다 아는 이야기라구?

여튼 이쯤해서 노래 한곡 들어보자. 제목 또한 아주 의미심장하다. '어떤 쉐리가 훵크밴드는 록음악 못한다고 하디?'

음악듣기 - Who Says a Funk Band Can't Play Rock?!

Funkadelic은 70년 데뷔앨범인 <Funkadelic>으로 세상에 그 낮짝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1년후 1971년... 훵카델릭 절대 명반중 하나인 <Maggot Brain> 을 발매하면서 블랙록(Black Rock)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세상 근심걱정을 혼자 다 집어삼킨 듯한 이 표정...

 특히 이 앨범에서 동명 타이틀 트렉인 <Maggot Brain> 은 10분이 넘는 인스트루멘탈 곡으로 기타 솔로를 연주했던 Eddie Hazel을 단숨에 천재기타 반열에 올려놓으며, 훵크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 되었다. 물론 훵크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까지 요 곡 하나때문에 앨범을 사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요 기타 솔로 하나때문에 빽판이 상당한 가격에 거래되었다는 루머가 있는데, 그당시 태어나보질 못한 기자로써는....) 

이 곡은 죠지 클링턴과 Eddie Hazel의 합작품이라 할수 있는데 죠지 클링턴은 이 곡의 분위기를 만들기위해 Eddie Hazel에게 이렇게 주문했다고 한다. '아주 슬픈 상상을 해봐.. 지금 당장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해봐.. 그리고 그 감정을 연주해봐' 그리고 Eddie Hazel은 그걸 아주 멋지게 표현해 낸거다. 수많은 기타 키드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바로 그곡, 안들어보고 갈 수는 없다.

음악듣기 - Maggot Brain

P-Funk 군단의 오맹달 부치 콜린스

그리고 얼마 후 슈퍼 울트라 캡쑝 오방 굿 넘버 원 베이시스트가 밴드에 합류하게 되는데... 바로 그가 바로 다름 아닌 훵크 베이스의 절대 지존 Bootsy Collins다. 이넘은 훵크 연재 1편의 제임스 브라운 단락에서 이미 소개시켜 드린바 있다. 

이때부터 P-Funk 사단은 수장격인 조지 클링턴과 이에 맞짱뜰만한 거장 부치 콜린스, 쌍두마차가 이끌어나가게 되는데 요 둘은 아마도 훵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라인업일 것이라 사료된다. 비유하자면 그들은 마치 '주성치-오맹달 콤비' 혹은 '랜디존슨-커트실링 원투펀치' 정도 될거다. 이해가 되시는감?

하지만 이 무렵 몇몇 오리지널 훵카델릭 멤버들이 팀을 떠나는 비극이 발생하고 마는데, Eddie Hazel은 마약 문제로 아예 큰집(?)으로 이주하게 되어버리고, Tawl Ross역시 마약으로 몸을 망쳐버려 팀을 계속 할수 없었다. Bill Nelson 처럼 죠지 클링턴과 돈문제로 티격태격하여 나가버린 넘도 있었다. (이런 사태의 결과 당시 죠지 클링턴은 머리에 피도 안마른 Michael Hampton이라는 10대 기타리스트를 발굴하여 관심을 끌었다.)

그러던 75년 훵카델릭은 Warner Bros로 둥지를 옮기면서 첫 메이져 데뷔작인 <Hardcore Jollies>을 야심차게 발매하였지만,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다. 오히려 같은해 전 레이블인 Westbound에서 발매한 <Tales of Kidd Funkadelic>가 더 좋은 반응을 보이며 챠트 30위 힛트곡인 <Undisco Kidd>를 배설하기도 했다.

그러던 78년, 훵카델릭 최고의 앨범이라 평가되는 <One Nation Under a Groove> 가 발매된다. 타이틀곡인 <One Nation Under a Groove> 이 무려 6주 동안이나 챠트 정상권에서 내려올줄 몰랐고, 앨범 판매량도 훵카델릭 사상 처음으로 플래티넘(100만장 판매를 뜻함)을 기록했다. 타이틀곡뿐만 아니라 부치 콜린스의 율동적인 베이스 연주가 일품인 <Groovallegiance>를 비롯하여 앨범에 실린 많은 곡들이 밀 그대로 '싸이키델릭하고 훵키' 했다. 게다가 마지막 보너스 트렉으로 실렸던 <Maggot Brain> 의 라이브 버전은 수많은 훵크록 키드들의 가슴팍을 여지없이 후벼파기에 충분했다. 당빠 훵카델릭의 최고앨범은 물론이고 훵크록 역사상 최고앨범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된다.

조악함의 극치를 달리는 앨범 커버와는 달리 알맹이는 초죽음 ...

음악듣기 - Groovallegiance 
* 후반부에 펼쳐지는 부치 콜린스의베이스 플레이가 감상 뽀인트

<One Nation Under a Groove> 의 성공은 다음 작품인 <Uncle Jam Wants You> 에서도 이어졌다. 앨범이 골드(50만장 판매고를 뜻함)를 기록함은 물론이고 15분짜리 곡인 <(Not Just) Knee Deep>이 챠트 1위를 거머쥐는 등 7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으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하지만 밴드의 성공은 그만큼의 트러블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밴드가 상업적으로 성공하자 돈문제가 밴드 내에서 붉어져 나오면서 여러 잡음이 생겨났고, 몇몇 멤버들이 불만을 가지고 팀을 탈퇴해 지들끼리 훵카델릭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제작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문제의 이 앨범은 <Connentions and Disconnections> 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고, 그동안 내공이 쌓인 넘들이 만든 앨범인지라 챠트에서 나쁘지 않는 성적을 거둘수 있었다. 물론 P-Funk의 핵심인물인 죠지클링턴이 빠진 지라 평론가들로부터 숱한 혹평들을 감수해야 했지만 말이다...

물론 요 시기에 진퉁 훵카델릭또한 <The Electric Spanking of War Babies>를 발표하며 챠트에 진입해버려, 사람에게 엄청난 혼란스러움을 선사하게 된다. (이 앨범의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한물간 훵크록의 화신 Sylvester "Sly Stone" Stewart가 이 앨범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슬라이 스톤이 어떤놈인지 모르시는분들은 훵크 연재 3편을 참조하도록.)

80년대로 넘어오면서 훵카델릭에 닥쳐왔던 여러가지 문제들은 밴드를 더이상 지속시킬수 없게 만들었고, 결국 해체되어버리고 만다. 죠지 클링턴을 비롯한 몇몇 아티스트들은 솔로 활동을 하기도 하고,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에 참여 하는등 꾸준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해체되었던 P-Funk의 수많은 뮤지숑들은 P-Funk All Stars라는 이름으로 죠지 클링턴과 레코딩 작업, 콘서트 활동등을 꾸준히 전개해 나가면서 P-Funk의 신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음악듣기 - You and Your Folks, Me and My Folks

 

Parliament (1970~1980)

허접무 사단보다 더 오합지졸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은 하나(One)였다.

이제 다시 70년대 초반으로 시간을 빠꾸해보자. 훵카델릭이 만들어지던 바로 그때, 죠지 클링턴은 60년대 자신이 이끌었던 두밥밴드 "The Parliaments"의 이름을 사용할수 있는 권리를 찾게 된다. 그리하야 밴드를 하나 더 결성하기로 결심하는데 바로 이름을 조금 쭐여서 새로 지은 이름이 바로 Parliament. 하지만 훵카델릭과 멤버 구성은 거의 같았다.

물론 훵카델릭과의 외향적인 면에서 결정적인 차이는, 록 밴드에 가까웠던 훵카델릭이 혼 섹션(트럼펫 트럼본 등의 금관악기 연주)을 거의 쓰지 않았던 것에 비해, Parliament는 이넘을 적극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야 훵커델릭에 비해 Fred Wesley 나 Maceo Parke r등 이쪽 악기 연주자들의 비중이 컸음은 말 안해도 콩떡이리라. 뭐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훵카델릭이 좀더 록적인 사운드(+사이키델릭)를 지향했던 것과 달리, Parliament는 좀더 P-Funk 스러운 음악을 했다는 거다. 여기서 본 기자, 이번 연재의 핵심 키워드인 P-Funk의 뜻을 알려주고자 한다. 똥꼬에 힘을 주시라...

P-Funk = Pure Funk 
(참고.. Parliament-Funkadelic의 준말이라는 주장도 있음)


사실 본 기자도 Parliament의 음악만이 정말 '순수한' 훵크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P-Funk라는 단어가 죠지 클린턴과 그의 추종자들의 훵크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자신들만의 음악성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려는 죠지 클린턴의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었나 싶다. 여튼 그들은 그들의 음악을 P-Funk로 지칭하였고,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P-Funk라는 용어가 생명력을 가질수 있었던 것이다. 좀 오바하자면 P-Funk는 곧 죠지 클링턴이요, 죠지 클링턴이 곧 P-Funk 라고 봐도 무리없겠다.

물론 P-Funk의 스타일을 형성하는데 있어 죠지 클링턴이 혼자 다해먹었다고 하면 분명 구라다. 왜냐면 훵카델릭이나 Parliament에서나 마찬가지로, 그는 노랫말이나 보컬 멜로디를 제외한 거의 모든 파트를 멤버 각자에게 위임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물론 P-Funk에 몸담고 있었던 아티스트들이 하나같이 1류 아티스트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대에 유명했던 훵크 관련 아티스트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던 곳이 바로 죠지클링턴의 P-Funk사단이었는데, 이들에 대해선 좀따 차근차근 디벼보자.

팔리아멘트(Parliament)는 1970년에 태어났다. 같은해 발매된 첫번째 앨범은 훵크, 록, 컨츄리, 가스펠등이 마구잡이로 짬뽕된 앨범이었는데 그리 주목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부치 콜린스가 이 밴드에 참여하고 나서부터 얘기는 좀 달라졌다. 말했듯이 "죠지클링턴-부치콜린스" 콤비의 파괴력은 대단했고, 그 첫결실은 1974년 R&B 탑10 힛트곡이었던 <Up For The Down Stroke>였다.

음악듣기 - Up For The Down Stroke

여기에 이어 부치 콜린스에 필적할 만한 인물들이 또 들어왔으니.. 이들이 바로 팔리아멘트의 간판이라고도 할 혼 섹션을 맡게 되는 Fred Wesley와 Maceo Parker. 이 둘 역시 부치 콜린스처럼 제임스 브라운 밴드의 핵심으로 활동했던 넘들이었다. 이런 멤버 영입의 결과, 이 무렵부터 아주 강력한 호른섹션이 (당근) 팔리아멘트의 중심축이 된다.

그리로 1년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훵크 앨범인 <Chocolate City>가 발매된다. <Ride On>과 타이틀곡인 <Chocolate City>가 챠트에서 성공하였는데, 특히 타이틀곡인 <Chocolate City>의 가사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백악관을 시커멓게 색칠해버리고, 대통령엔 제임스 브라운, 영부인에는 아레사 프렝클린, 그리고 교육부 장관에 스티비 원더를 앉히자는 기가 막힌 가사가 바로 그것이다. 죠지 클링턴의 기발함이 독보이는 가사였다고 할수 있겠지만, 아직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년후...

1976년, 이 한해동안 팔리아멘트는 별5개 만점짜리 앨범을 2장이나 세상에 내놓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넘이 <Mothership Connection>

먼저 발매된 앨범 <Mothership Connection> 은 George Clinton의 기발함, Bootsy Collins의 베이스, 그리고 Fred Wesley와 Maceo Parker의 Horn 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P-Funk 사단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P-Funk(Wants To Get Funked Up)> 을 비롯하여 <Tear The Roof Off The Sucker>, <Mothership Connection> 같은 주옥같은 훵크 명곡들이 챠트를 강타하며 이 앨범을 팔리아멘트 최고의 앨범 반열로 올려놓았다. 판매량 또한 만족스러워서 팔리아멘트의 첫 플래티넘 앨범으로 기록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둔다.

음악듣기 - P-Funk(Wants To Get Funked Up) 

요놈이 <Clones of Dr. Funkenstein>

그리고 같은 해 팔리아멘트는 전작에 버금갈 만한 훵크앨범을 또 하나 배출하게 되는데, 바로 <Clones of Dr. Funkenstein>이 그것이다. 

평소 사이언스 픽션적인 요소를 팔리아멘트 곳곳에 배치했던 죠지 클링턴의 기발함이 닥터프랑켄슈타인 + 훵크의 합성어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이후 닥터 훵켄슈타인은 죠지 클링턴 자신을 지칭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물론 이 앨범이 음악적인 면에서 캡숑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음악듣기 - Dr. Funkenstein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내려오신 우리의 닥터훵켄슈타인!!

그리고 그 무렵, 팔리아멘트는 Earth Tour라는 이름으로 콘서트 투어를 하게 되는데, 죠지클링턴-부치콜린스-프레드 웨슬리-메이시오 파커-에디 헤이젤-마이클 햄튼 등 P-Funk사단의 핵심 멤버들이 몽땅 출연하는, 그야말로 올스타전이었다. P-Funk 사단의 공연은 아주 대규모의 볼거리 많은 쇼로 유명했는데,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죠지클링턴이 우주선을 타고 내려와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쇼를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는데, 후에 이러한 자금압박이 P-Funk 몰락의 한 원인이 되었단다. 수십명의 밴드 멤버들 돈주랴, 무대장치 설치하랴... 어쨋든 쇼는 엄청났고 센세이셔널했다. 후에 <Live: P-Funk Earth Tour>라는 이름으로 라이브 앨범이 발매되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내려오신 닥터 훵켄슈타인...

버뜨... 히딩크의 쓰리콤보 어퍼컷에 버금갈만한 마지막 강펀치를 죠지 클링턴과 P-Funk사단이 준비하고 있었으니, 팔리아멘트의 최고 앨범이라 평가되는. <Funkentelechy Vs. the Placebo Syndrome>이 바로 그것이다.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뿐 아니라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Flash Light>는 팔리아멘트 최고의 힛트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27위까지 올라갔던 <Funkentelechy>역시 필청 트렉이라 하겠다.

Funkentelechy Vs. the Placebo Syndrome

음악듣기 - Agony of Defeet

팔리아멘트는 이 앨범 이후에도 70년대가 끝날때까지 당대 최고의 훵크밴드로써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며 많은 명작들을 뽑아내었다. 그러나 역시, 훵카델릭이 그랬던 것처럼 80년대에 들어서자 밴드는 공식적으로 해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비록 훵커델릭과 팔리아멘트는 이렇게 해체되었지만 P-Funk도 끝나지 않았고, 그곳에 몸담았던 사람들 모두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It Ain't Over 'Til It's Over! 

그럼 담 시간에는  P-Funk에 몸담았던 넘들 개개인을 한번 찬찬히 살펴보기로 하자. 위대한 음악성과 창조성으로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P-Funk 사단 구성원들의 삶과 음악 이야기가 열분들을 기다린다. 구궁...

그럼 이만! 굿바이 & 굿나잇!!


죽기전까지 단 한번만이라도 Maggot Brain 을 연주해 보고싶은
딴따라딴지 훵크 전도사
박희봉(heebong@ddanzi.com)


딴지일보는 가는으뜸체로 최적화 되어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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