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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훵크 음악을 디벼주마 -4-

2002.4. 22. 월요일
딴따라딴지 훵크 전도사 박희봉

 

독자 여러분 안녕들 하신가.

어느덧 싱그러운 4월도 말로 향하고 있다. 화창한 날씨속에 삼삼오오 짝지어서 놀러도 댕기고, 연애질 및 어쩌면 공부질에도 바쁜 와중에 이렇게 본 기자의 기사에 짬내주셔서 절라 감사하다. 열분들의 기대에 져버리지 않도록 본 기자, 발바닥에 땀나도록(다한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열심히 뛰어댕기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본 훵크 연재 4탄이 본지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을 무렵, 본기자는 인터넷도 할수 없고 어무이 아부지도 만날수 없는 그런 곳으로 떠나게 된다. 고로 아쉽지만 당분간 독자열분들의 성원에 응답할수 없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어딜 가냐고? 

국가 기밀이라 누설해서는 클나지만 열분들의 무거운 입을 믿고 공개하자면 본기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이번에 정부기관의 요원으로 선발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고, 나라의 중추를 이루는 행정기관에 소속되어 공익을 위해 각종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라고만 알고 넘어가 주시기 바란다. 이처럼 중차대한 역할을 소화해 내기 위해 장장 4주간의 합숙훈련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당당한 요원으로 다시 태어나 열분들의 성원에 보답할테니 너무 서운해 하시지 마시라. 미리미리 멜질 쌔려주셔도 상관읎다.

그럼 잡설은 그만 하고 지난 호에 약속했었던 바와 같이, 70년대 훵크 스타 디벼주기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갈까 한다. 연재의 특성상, 지난 기사를 보지 못하신 분들은 꼭 짬내서 첨부터 보시길 희망하면서, 이글을 읽는 독자열분들이 훵크 연재에 거품을 물 정도의 팬이라는 착각을 전제로 하여 글을 진행시켜 나가도록 하겠다.

 

Earth Wind & Fire

어쓰 윈드 앤 화이야. 얼굴과 옷차림만 봐도 뭔 음악 하는지 다 써있다.

오늘 열분들께 본기자가 첫빠따로 소개시켜 드리고자 하는 밴드는 70년대 중후반 무렵 최고의 인기 훵크 밴드 "Earth Wind & Fire" 다. 이넘들은 본토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수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슈퍼 밴드다. 아마도 본 기자의 훵크 연재에서 소개시켜 드렸던(또는 소개해드릴) 훵크 아티스트들 중에서 그 인기나 인지도 면에서는 단연 으뜸일 것이다.

이들의 음악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뿅가게 만드는 보컬 하모니, 듣는 넘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신바람 훵키, 그리고 가슴 뻥뚫리는 시원시원한 혼 섹션에 아프리카 토속음악까지 결합된(실제로 리더인 Maurice White가 아프리카 민속 악기인 칼림바를 연주하기도 했다) 오방 신나는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을 단지 '신나는' 음악이라고만 매도(?)할 수 없는 것은 이들에게는 또한 가슴 적시는 소울 명곡들이 있기 때문이다. 암튼 어떤 음악이길래 이렇게 본 기자가 이렇게 흥분을 하는지 독자열분들 궁금해 할거라 사료된다.  2곡 정도 들어가면서 계속 읽어주시라...

음악듣기 - September
음악듣기 - Reasons

 

눈,코,입, 헤어스탈까지 카리스마 가 넘쳐나는 Maurice White 옹

그럼 Earth Wind & Fire의 탄생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우측 사진에서 보이는 저 꽃미남이 바로 다름아닌 Earth Wind & Fire의 핵심 멤버라 할 수 있는 Maurice White라는 넘이다. 훵크 뮤지션으로는 얼핏 연상되지 않는 뜻밖의 분위기에 독자열분들의 가심이 벌렁벌렁 하실지도 모르겠다.

1941년 멤피스에서 태어난 이 양반, 역시나 전형적인 흑인 아티스트들처럼 똥오줌 못 가릴 나이때부터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을 시작하였다. 12살 무렵 동네 밴드의 퍼레이드를 보다가 필이 꽂혀 드럼을 시작했지만 집에 드럼이 없는 고로 벽이나 방바닥을 두둘기면서 놀았다.

시작은 이렇듯 초라했지만 실력이 늘고 내공이 쌓여가면서 OKeh Records와 Chess Records에서 세션드러머로 활약할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밴드를 가지고 싶어했고, 결국 베이스를 공부하고 있었던 동생 Verdine White와 주축이 되어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LA에서 오디션을 열어 멤버들을 영입하였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창단멤버가 무려 10명에 이르는 빅밴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가리수가 많다보니 지휘하기 힘들었을거란 니들의 예상과는 달리, 밴드 멤버들의 증언에 의하면 리더인 Maurice White는 이때부터 고기가 물을 만난 듯 확실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고 한다.

암튼 밴드는 곧 워너브라더스와 계약을 채결하게 되었고 2장의 LP를 발매하였다. 이 시기에 <Love is Life>, <I Think About Lovin' You> 와 같은 힛트곡을 생산하긴 했지만 밴드 멤버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 힌편 이무렵 또하나의 핵심 멤버라 할수 있는 넘, 어렸을 적부터 쓰레기통으로 드럼 연습을 했다는 4 옥타브 팔세토 보컬, Philip Bailey가 가입하게 된다.

이후부터 Earth Wind & Fire는 Maurice White와 Philip Bailey의 환상적인 보컬 하모니를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우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Philip Bailey, 요넘이 들어오면서부터 Earth WInd & Fire가 잘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하나의 꽃미남, Philip Bailey 옹

그들이 힛트 행진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것은 74년 발매된 <Open Our Eyes> LP가 힛트를 하고서 부터였다. 신나는 훵키 넘버 <Mighty Mighty> 와 감미로운 소울 넘버인 <Devotion> 가 크게 힛트하면서 앨범은 물경 100만장을 돌파하였고, Earth Wind & Fire는 대중들에게 그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킬수 있었다. 이어 수많은 라이브 퍼포먼스를 거치면서 밴드는 거대한 락 이벤트에 당당하게 참여할수 있는 몇안되는 흑인 밴드중 하나가 되었다.

이들의 공연은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공연으로 명성이 높았는데, 멤버들 전원이 춤을 추면서 악기를 연주하는건 기본이고, 수많은 고난이도 기술과 삐까뻔쩍한 무대장치들을 선보이면서 사람들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고갔다. 멤버들의 증언에 의하면 공연의 여러가지 상황을 만드느라고 앨범 팔아서 번 돈을 콘서트하는데 다 쏟아부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양적인 측면만 강조한 공연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보컬과 연주자들이었고, 앨범에 절대 꿀리지 않는 라이브 퍼포먼스로 그것을 입증해보였다. 사실 스튜디오 앨범 자체도 녹음실에서 자연스러운 잼 연주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으므로 라이브 연주가 스튜디오 레코딩보다 떨어질 이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승승장구 하던 와중 Sig Shore이라는 작자의 의뢰로 영화음악에까지 손을 대게 된다. Sig Shore 이 양반은 커티스 메이필드가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던 영화 Superfly의 제작자이기도 하다.(훵크 연재 2편 커티스 메이필드 편을 참조)

Earth Wind & Fire는 영화에 직접 배우로 참여하는등 열성적으로 참여하였지만 영화는 저조한 흥행실적에서 허우적거렸다.

<That's The Way Of The World> 바로 요 앨범이다.

그러나 영화의 삽질에 아랑곳하지 않고 앨범 <That's The Way Of The World> 는 초대박을 터트리게 되는데, 수백만장의 앨범 판매고와 넘버원 힛트싱글까지 자랑하며 밴드 최고의 앨범으로 남게 된다. 

이 앨범의 대성공에 힘입어 같은 해 발매한 라이브 앨범 <Gratitude> 또한 수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이들의 의 힛트 행진에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된다. 이어 76년 <Spirit>, 77년 <All 'N' All>, <Sing a Song> 등의 앨범이 줄줄이 힛트하는 등 밴드의 성공은 그칠줄 몰랐다.

그리고 디스코가 전세계를 휩쓸고있을 무렵인 79년, 앨범 <I Am> 을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에서 열분들도 익히 아실만한 바로 그 곡!! <Boogie Wonderland> 와 유명한 데이빗 포스터 작곡의 소울 발라드인 <After the Love Has Gone>가 크게 힛트하면서 가히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기에 이른다.

참고로 <Boogie Wonderland> 의 뮤직비디오 또한 열라 추천하는 바이다. 장님이 신나서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디스코를 추게 만든다는 이 뮤직비됴를 함 보면 삶에 지친 독자열분들도 열라 기분이 좋아질거다. 워낙 유명한 뮤직비됴니깐 좀만 고생하시면 쉽게 찾으실수 있다. 정 안되면 기자가 훈련소에서 컴백하는 4월 27일이후에 멜질쎄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독자열분들께 전달해 주겠다.

암튼 상황이 이러다보니 70년대 후반 데뷔한 상당수의 흑인 뮤지숑들이 레코드사로부터 Earth Wind & Fire 스타일의 음악을 요구받은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일수도 있겠다.

음악듣기 - Boogie Wonderland
음악듣기 - Fantasy

2,3년 전쯤 Earth Wind & Fire가 내한공연을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당시만해도 훵크에 문외안이던 본 기자는 그저 소 닭보듯 지나쳐 버렸는데, 아마 그때 이 양반들이 진짜로 왔었고 본기자가 그걸 안보고 넘어갔다면 평생 눈물로써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드 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이들의 내한공연은 결국 취소되어 버렸는데, 팀의 리더이신 Maurice White의 건강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기획사의 수지타산 때문이라는 말도 돌았다.

암튼 좀 늦은 감은 있었지만 그때라도 왔었어야 했다. 왜냐믄 이젠 완벽한 예전의 멤버 그대로의 (아니 적어도 핵심멤버만이라도 갖춘) Earth Wind & Fire의 공연을 볼수 있는 기회는 영영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밴드의 중심 Maurice White 옹께서 지금 파킨스씨 병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은 커녕 술담배도 멀리했다던 절실한 종교인이었던 그에게 이런 질병이 닥친것은 절라 씨바스럽고 오노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오티스 레딩, 마빈 게이, 커티스 메이필드에 이어 모리스마저 이런 불행을 겪게 되다니...

아직도 졸라 왕성하게 활동하시고 인기도 캡쑝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끝내고싶은 밴드였지만 이처럼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서 절라 유감이다. 앞의 곡들을 열심히 들은 열분들이라면 Maurice White 옹의 쾌유를 위해 오늘밤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럼 다음 아티스트로 넘어가자.

 

Average White Band

창단 멤버들 모습. 훵크 밴드라기 보다는 마치 핑크 플로이드 같은...

오늘 두번째로 소개시켜 드릴 밴드는 "Average White Band" 되겠다. 요 이름만 봐서도, 아님 위에 사진만 봐도 눈치빠르신 독자 열분들은 지금까지하고는 뭔가 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타... 요 인간들, 전부다 백인들이다. 더군다나 요 사람들 다 브리티쉬(영국인)란다. 하지만 브리티쉬 백인들이라고 해서 훵크 못한다는 법이 있단 말이더냐. 이름은 비록 Average White Band 지만 그들의 실력을 따져서 이름을 다시 지어야 한다면 아마 No.1 White Funk Band 라고 해야 할거다.

이제껏 수많은 백인들이 흑인들의 소울/훵크를 어쭙지 않게 따라하면서 욕을 많이 얻어먹었지만, 요 밴드만큼은 절대 아니라고 본기자 장담하는 바이다. 이들은 흑인 훵크 음악계에서 인정받는 몇 안되는 백인들이며 아직까지도 수많은 훵크 뮤지숑들에게 존경받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들 음악이라면 편견부터 가지는 본기자, 사실 첨엔 요사람들 음악 들어보지도 않고 그저 기타만 대충 찌기찌기징 하고 베이스만 슬랩하면서 훵크라 우기는 넘들일 거라고 오해했었다. 하지만 들어보니 그게 아니라는거다. 혹시나 밴드 멤버들이 이 글을 볼지도 모르니 한마디만 전달하고 싶다... 미안함다! 형님들!

밴드의 역사를 좀 알아보자. 에버리지 와잇 밴드가 결성된 것은 1971년의 일이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보컬겸 베이시스트 Alan Gorrie가 주축이 되어 Hamish Stuart (기타), Owen McIntyre (기타), Malcolm Duncan (섹소폰), Roger Ball (섹소폰,키보드) 그리고 Robbie McIntosh (드럼)가 참여하여 6인조 훵크 밴드로 탄생한 에버리지 와잇 밴드...

이들의 첫 앨범은 73년 되던 해 발매된 <Show Your Hand> 다. 아주 훵키하고 소울풀한 음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론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1년후 <AWB> 앨범, 또는 <White> 앨범이라고 불리는 작품으로 그들은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Pick Up the Pieces> 과 같은 넘버원 힛트곡까지 자랑하면서 밴드는 일약 대스타가 되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브리티쉬 출신에, 백인들이라는 것에 적지 않게 쇼크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암튼 요 앨범, 버릴 곡 하나도 없는 훵크역사에 길이 남을 필청 앨범이 되어버렸다. 예전에 본 기자의 기타 사부가 들어보라고 권해주었던 본작,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충대충 듣고 사부한테 다시 갖다준 기억이 본기자의 뇌리를 스쳐가면서 한마디로 절라 후회막심이다.

죽이는 앨범 자켓... 이런거 본적있수?

음악듣기 - Queen of My Soul
음악듣기 - A Love of My Own

하지만 앨범의 엄청난 성공으로 들떠있던 밴드는 커다란 시련을 맞이하게 되는데, 드러머였던 Robbie McIntosh가 헤로인 과다 투약(?)으로 그만 죽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Bloodstone의 드러머였던 Steve Ferrone를 영입하게 된다. 이 양반 피부색이 남들보다 약간 개성있으신 관계로 밴드는 이때부터 100% 백인은 아니게 되었지만, 암튼 그래도 여전히 백프로 브리티쉬를 고수했다. 새로운 드러머와 함께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음 앨범에 열중하게 되고 75년 <Cut the Cake> 을 발매하게 된다. 동명타이틀곡의 힛트와 함께 이 밴드 최고의 발라드로 칭송받고 있는 <Cloudy>와 <If I Ever Lose This Heaven> 가 인기를 끌면서 밴드가 건재함을 입증하였다. <Queen of My Soul> 이 힛트한 다음 앨범인 <Soul Searching> 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다소 깔쌈해진 최근의 아저씨들.. 가운데 여자는 네덜란드 출신의 섹스폰 연주자 캔디 덜퍼.

이후 계속 스튜디오 앨범작업을 하고, 그 유명한 소울 가수 Ben E. King(열분들 아마 이 양반이 불러제꼈던, "when the night~" 으로 시작하는 stand by me 아실거다.. ) 과 같이 앨범을 내기도 했지만 <AWB> 시절의 영광의 재현하는 일은 힘들어 보였고 결국 82년 밴드가 해체하기에 이른다. 역시 80년대는 수많은 훵크밴드들에게 암흑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후 89년에 이르러서야 Gorrie, Ball, McIntyre가 다시 모여 밴드를 재결성하게 되었다. 이후 계속 앨범작업도 하고 월드투어도 하는 등 계속 활동을 하고 계신걸로 본 기자 알고있다. 이분들 요새 뭐하는지 혹시 자세히 아시는 분 있으시면 살짝 귀뜸해 주시라... 본기자도 궁금하다.

사실 이 밴드의 경우 백인들임에도 흑인 훵크 아티스트들보다 많이 꿀리지 않는 훵크 음악을 했다는 점에서 플러스 요인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겠다. 마치 요즘 에미넴이 흑인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힙합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심 되겠다.

2곡정도 더 들어보시고 과연 흑인들의 훵크와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한번 스스로 느껴보시라.

음악듣기 - I Just Can't Give You Up
음악듣기 - Atlantic Avenue

 

Cameo

이번에 열분들께 소개시켜 드릴 밴드는 Cameo 라는 팀이다. 70년대 후반에 등장해서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밴드인데, 비록 지금은 인기가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동안 훵크 역사에 무시하지 못할 활동을 하셨던 밴드다.

이른바 시원시원한 훵크를 하신 분들인데 이분들의 음악을 가르켜 'C-Funk' 라고 불렀단다. 게다가 다른 여타의 훵크 밴드들이 침체기에 빠져있었던 80년대에 오히려 전성기를 꽃피운 멋진 분들이다. 혹시나 70년대 훵크스타 시리즈에 왜 넣었냐고 딴지 걸만한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넘들 결성은 70년대에 했다는 핑계를 둘러대면서 여하튼 소개시켜 드린다. 글고 뭐, 80년대 중반이 전성기이긴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에도 나름대로 인기가 많이 있었응께...

Cameo 는 70년대 중반 Larry Blackmon 이란 넘이 Nathan Leftenant와 Tomi Jenkins 과 함께 만든 밴드다. 뻔하지만 세 놈다 졸라 천재 뮤지숑이고 다재다능했단다. 그래서 밴드이름이 Cameo가 되었단다. 초창기 까메오는 Parliament/Funkadelic 과 종종 투어를 했다고 한다. 팔리아먼트/펑커델릭은 훵크의 마왕 죠지 클링턴 옹께서 이끄신 밴드들이다. 첨들어본다고 너무 쫄지마라. 다다음번 연재 때, 조올라 자세히 디벼 줄거다.

암턴 Cameo는 죠지 클링턴과 같은 Casablanca Records에 계약까지 했다니, 그들의 음악이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시리라. 사실 죠지 클링턴의 음악을 먼저 소개시켜 드려야 함이 올바르겠지만 본기자의 꼴리는 성격상 어쩔수 없으니 양해바란다. 암튼 77년과 78년 <Cardiac Arrest> 와 <Ugly Ego> 를 발매하며 그들만의 강력한 훵크음악을 수많은 대중들에게 깊히 각인시킨다.

훵크 필청 앨범이라는 이들의 데뷔작

특히나 데뷔작인 <Cardiac Arrest> 는 평론가들로부터 훵크 매니아라면 꼭 들어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훌륭한 앨범이었다. 이어 이들은 자부심을 갖고 그들의 음악을 C-Funk 라고 칭하게 된다.(이것 역시 죠지 클링턴이 자신들의 훵크를 P-Funk라고 부르는것을 따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음악듣기 - Funk Funk
음악듣기 - Post Mortem

하지만 79년이었다. 그때가 언제냐.. 바로 디스코가 전세계를 휩쓸고 다니던 때였다. 위에서 소개시켜드린 Earth Wind & Fire도 79년 디스코 음악인 <Boogie Wonderland> 를 선보이지 않았던가. 이들 역시 그들의 강력한 C-Funk를 잠시 약간 접어두고 디스코를 선보이게 된다. 물론 디스코를 저급한 음악이라고 취급하는 흑인음악 매니아들이 상당수 있기때문에(사실 본기자도 아주 약간 그랬다) 이를 두고 욕하는 넘들도 있었다. 하지만 요 앨범은 Cameo 팬들 사이에서 빠질수없는 필수 앨범이 되어버렸고, <I Just Want To Be> 라는 걸출한 R&B힛트곡을 배설(?)하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80년대가 도래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실 요 시기는 훵크음악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시련의 시기라 아니 할수 없다. 본 기자가 이제까지 거품을 물면서 열분들께 소개시켜드린 훵크 아티스트 중에서 80년대를 온전하게 넘긴 넘은 스티비 원더 옹을 제외한다면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바로 요 위에 소개시켜 드린 두 밴드 역시 80년대를 이겨내지 못하고 말았으니...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Cameo 라는 밴드가 훵크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꾀 크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물론 세월이 흐르고 모든것이 변하는데 그들 역시 변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키보드 사운드에 비중을 둔 아주 깔쌈한 댄스 훵크들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이들은 80년대에 살아 남았을 뿐더러 오히려 전성기를 구가했으니 말이다.

83년 되던 해에도 그들은 <She's Strange> 라는 앨범과 요상한 느낌을 자아내는 타이틀곡으로 알앤비 챠트 1위까지 먹으면서 80년대 음악 시장에서 확실하게 승자의 위치를 이어갔다. 하지만 진짜 대박은 아직...이었다. 최고 히트 앨범인 <Word Up!>이 86년도에 울트라 캡숑 힛트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여타의 명반들이 그렇듯 앨범 전체가 졸라 괜찮은 난이도를 자랑하며 70년대 훵크 팬들과 80년대 힙합/팝 매니아들을 모두 사로잡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거두어 버리고 만다. 이 앨범 역시 타이틀곡인 <Word Up!> 이 챠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아뿔사... 바로 2분전 이곡 Word Up!을 들으며 기사를 쓰던 본 기자, 너무 흥겨워 일어나서 춤추다 본 기자의 재산목록 1호인 기타가 나자빠지는 오노스러운 사태가 발생하였다. 독자열분들도 주의하시라)

앨범 <Word Up!> 의 커버에서 볼 수 있듯이 86년 당시에는 핵심멤버 3명만 남았다.

이상의 활동상황에서 이들 Cameo가 20여년동안 지치지 않는 Funk 음악으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밴드라는 사실을 알만 하실 것이다. 이분들 지난 2000년에도 <Sexy Sweet Thing>을 발매하며 음악적 열기가 식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공개하시며 여전히 사랑받고 계시다. 고로 본기자 남의 일같지 않게 졸라 뿌듯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바이다. 단지 국내에서 그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많이 안타깝지만, 이번 기사를 계기로 열분들께서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다.

음악듣기 - Word Up! (춤출때 주위의 물건들을 주의!)
음악듣기 - She's Strange

 


오늘도 아쉽지만 여기서 끈내고자 한다. 열분들이 조금이라도 흥미를 가지고 읽어주셨다면 그게 본 기자의 보람이다. 그러만큼 오늘 열분들에게 소개시켜드렸던 밴드들은 적어도 이름이라도 기억하시길 바란다.

특히 오늘 곡들은 무척 흥겨운 곡들이 많다. 그래서 얼핏 들으면 싸구려 댄스 음악으로 들릴수도 있다. 하지만 열분들이 이 음악들을 훵크로 보셨건, 디스코로 보셨건, 아님 싸구려 댄스 음악으로 취급하셨건 간에, 들으면서 조금이라도 즐거운 맘으로 어깨나마 들썩거렸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제 아무리 음악에 뛰어난 지식이 있다 한들 몸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는 음악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훵크의 마왕이신 죠지 클링턴 할배께서도 일찌기 이런 말씀을 하시었다.

당신이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음악이 있다면, 바로 그 음악이 훵크다


알긋냐... 그럼 이상! 굿바이 & 굿나잇!!

for H.I.S. birthday...

 

 

 

'생각은 진지하게, 말과 행동은 재미있게'를 생활신조로 삼은 
딴따라딴지 훵크 전도사 
박희봉  (heebong@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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