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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훵크 음악을 디벼주마 -3-

2002.3.13.수요일
딴따라딴지 훵크 전도사 박희봉


다시 만나서 졸라 반갑다. 

벌써 연재 3편째다. 몇 편까지 가게 될 지 본 기자도 모르지만, 암튼 계속 사랑해주시고 관심많이 가져주시라. 글타고 본 기자, 애정결핍이라던가 뭐 그런건 아니니 괜한 걱정이랑 마시고... (이거야말로 괜한 걱정인가?)

지면을 빌어 메일 보내서 성원해주신 분들, 조디 컨퍼런스에서 관심가져주신 분들께 감사하단 말씀 드린다.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멜질에는 답멜 보내고 게시판에는 리플을 손수 다는, 본지 역사상 유래가 없는 엄청난 수고를 했다는 사실 참고로 아시기 바란다.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독신여성의 메일은 한통밖에 받질 못했으니, 여성들아... 니들 분발 해야겠다.

여기서 뜽금없이 시작하긴 좀 므흣하고, 무엇보다도 본지의 은총을 받은지 얼마 안되어 훵크 연재 1,2편을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지난 줄거리를 간단히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교회 가스펠 음악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소울음악은 60년대에 이르러 모타운, 스택스, 아틀란틱 등 소울전문 레이블의 발흥으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다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으로 큰 시련을 겪게 되고 이러한 변화에 영향받아 정치적이고 공격적인 음악으로 무장한 제임스 브라운이 흑인들의 우상으로 등장하면서 훵크 음악이 시작되어 70년대를 풍미하게 되며, 한편 훵크를 기반으로 둔 소울 아티스트들로는 마빈 게이, 커티스 메이필드, 그리고 스티비 원더가 있다. 헥헥...

그럼 정리 다 했으니 오늘 이야기로 넘어간다.

 


70년대 훵크 스타 마구 디벼보기 시리즈!!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7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훵크 아티스트들을 무차별적으로 디벼 볼란다. 막무가내로 디빌거니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그놈이 그놈같이 생긴게 흑인들인데 (농담이다. 흑인 열분들 열받지 마시라..), 이름도 그리 만만치 않다. 

혹시 무차별 아티스트 디비기에 꼭 넣었으면 하는 아티스트가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멜질 해라. 아티스트에 대한 스토리같은 것도 같이 보내주면 더 고맙고. 기자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훵크 연재! 절라 감동적이지 않냐...

 

Sly & The Family Stone

 

두둥... 드디어 올거시 왔다. 훵크락의 최고봉,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 

이 시점에서 늬거들은 세수하고 손도 씻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해주기 바란다. 이제 진퉁 훵크가 슬슬 나오기 시작함이니...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 이넘들은 이름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시대를 앞서간 천재 뮤지션 슬라이 스톤이 이끌어간 울트라 캡숑 훵크 밴드다.

슬라이 스톤 이넘은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제임스 브라운에 의해 탄생되었던 훵크 음악이 바로 그의 손을 거치면서 집대성 되는데, 단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훵크를 바탕으로 소울, 가스펠, 블루스, 하드락, 사이키델리아 등을 자유자재로 섞으며 무궁무진한 사운드를 만들어내 버린 넘이니 말이다. 

남녀노소, 흑백 인종뿐만 아니라 시공까지 초월해버린, 슬라이 스톤의 음악들... 이제부터 함 디벼보자!

이 밴드에서 제일 주목할 넘은 당근 슬라이 스톤인 만큼 이넘 개인 중심으로 함 살펴보기도 한다. 슬라이는 1944년 텍사스에서 Sylvester Stewart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어렸을 적부터 노래를 허벌나게 잘했다고 한다. 역시 이넘도 어렸을적에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을 했단다. 9살적부터 기타를 배우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벌였는데 16살 나이에 <Long Time Away> 라는 노래를 힛트 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밴드 활동을 하던 66년경 그의 인생에서 졸라리 중요한 인물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Larry Graham이라는 넘이다. 

이넘은 조 아래 더 자세히 나와 있으니 설명은 생략하고 일단 훵키 베이시스트라고 알아두자. 래리 그래험은 그 당시 어무니(...)랑 밴드를 하나 결성해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래리의 환상적인 베이스 테크닉을 직접 본 슬라이 스톤은 그를 그의 밴드에 합류시키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당대 최고(어쩌면 역대 최고)의 베이시스트중 한명이었던 래리 그레험을 영입하고 기타와 피아노에 그의 형제들인 Fred Stewart와 Rosie Stone을 포진시키자. 이제 드러머와 섹소폰 연주자가 필요해졌다. 그런데 그는 밴드를 남녀와 흑백이 어우러진 곳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밴드를 최대한 개성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에 넘쳐나는 수많은 흑인 연주자들을 제껴두고 2명의 백인을 기용하는데, 그넘들이 Greg Errico(드러머)와 Jerry Martini(섹소폰)다. 여기에 전에 같이 활동하던 트럼펫 연주자 Cynthia Robinson까지 가세한 결과, 드뎌 훵크 역사상 가장 자유분방하면서도 특이한 흑백남녀 혼성 훵크밴드 'Sly & The Family Stone' 이 탄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쯤해서 노래 함 들어보자.

음악듣기 - Sing A Simple Song

음악듣기 - I Want To Take You Higher

 

누가 누군지 함 맞춰보시라...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환상적인 공연 덕분에 금방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에픽 레코드와 계약을 채결하면서 1967년 첫 앨범인 <Whole New Thing> 이 발매되었다.

하지만 천재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어필하는것은 그리 쉽지 않은 법... 평론가들과 동료 훵크 아티스트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초라한 판매고를 기록하고 만다. 이런 결과는 슬라이 스톤에게 좀더 팝적인 음악을 생산하도록 종용했고, 원치 않았지만 결국 그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1968년 발표한 앨범, <Dance To The Music>은 이런 결심의 결과물이었고 밴드를 단숨에 인기정상으로 올려놓게 된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한 거였다. 그 이후 발매된 일련의 앨범들이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1971년 발매되었던 <There's A Riot Goin' On>은 마빈게이의 <What's Going On>과 함께 흑인 음악의 혁명으로 평가받는 명반이 되었다.

바로 요 앨범...

그 당시로서 그들의 음악은 너무나 신선했다. 그루브하고 힘찬 베이스와 훵키한 기타 연주, 다채롭고 팝적인 보컬 라인,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는 브라스 리프 등 모든 면에서 다른 밴드들과는 확연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음악을 스폰지처럼 흡수했던 천재 슬라이 스톤의 역량 덕분에 그 당시 존재 했던 모든 락음악의 장르를 훵크라는 울타리안으로 한데 어우를 수 있었다. 

스타일면에서 본다면 그들의 음악은 언제나 밝고 힘찼다. 언제나 화합과 사랑을 노래했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려고 노력했다. <Every Dog Has His Day>, <You Can Make It If You Try>, <Everybody Is A Star> 등 제목만 봐도 슬라이 스톤이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특히나 <Sing A Simple Song> 에서 그의 배려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 노래의 내용은 대충 요렇다. "늬거들을 위해 내가 아주 따라부르기 쉬운 멜로디를 하나 만들었다, 같이 불러보자~ 기분이 좋아질거여~ 야~~야야~야아~야~"

인기를 얻은 밴드는 수많은 라이브 무대를 거치면서 그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입증해 보였다. 특히, 우드스탁에서의 공연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록 음악사에 길이 남을 퍼포먼스로 기록되고 있다. 피곤에 지쳐 금방이라도 잠들것 같던 수십만의 관중들은 슬라이 스톤의 마법과도 같은 무대 매너에 의해 어느새 하나가 되어 <Higher>를 열창하고 있었다.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고자 했던 슬라이 스톤의 노력이 결실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음악듣기 - Jane Is A Groupee

음악듣기 -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Elf Agin)

하지만 짧고 굵었던 예술이라고 해야할까... 슬라이 스톤의 권좌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1972년 밴드의 핵심멤버였던 베이스 연주자 래리 그래험이 슬라이 스톤과의 불화로 인해 밴드를 나가고 나서부터 밴드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슬라이 스톤의 심각한 약물 남용은 그를 파멸의 길로 내몰았다. 밴드가 안팍으로 휘청이자 팬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조지 클린턴(70년대 슬라이 스톤과 함께 훵크음악을 대표하는 넘이다)이 이끄는 'P-funk All Star' 에 꼽사리끼면서 음악활동을 했지만 결국 마약소지혐의로 감옥에 들락거리며 시간만 허비하게 되면서 대중들과 점점 멀어져갔다.

훵크록 1인자인 슬라이 스톤은 이렇게 잊혀져갔다. 우짜겠냐, 정상의 기쁨을 맛본자는 반드시 좌절의 쓴맛도 경험해야 하거늘... 하지만 모르고 지나치기엔, 슬라이 스톤, 이넘이 너무나 위대했던 넘이라 늬거들도 이름만이라도 알았으면 하는거이 본기자의 작은 소망이다. 본 기자가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의 열렬한 팬인 관계로 이넘들을 소개하던 내내 좀 흥분했지만 이만 가슴 쓸어내리고 정리할란다. 늬거들 바쁜거 다 알지만 그래도 남는 시간 좀 쪼개서 이넘들 음악은 꼭 찾아서 듣기를 바란다.

 

Graham Central Station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에 이어 소개시켜드릴 밴드는 'Graham Central Station' 이다.이름에서도 알수 있듯이 이 밴드의 리더는 방금 소개해드린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의 베이시스트 래리 그래험, 그 양반이다.

래리 그래험, 이넘은 베이시스트로써 락음악사에서 가장 독보이는 업적중 하나를 이룩한 넘이다. 불행이도 인지도가 떨어져서 글치, 이넘이 베이시스트로서 이룩한 업적은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리스트로서 이룩한 업적하고 삐까삐까하다고 봐도 무방할 거다. 

그럼 먼저 그의 환상적인 베이스 연주를 들어가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음악듣기 - Hair

음악듣기 - Love & Happiness

래리 그래험은 1946년에 태어났다. 기타치는 아부지와 피아노치는 어무니를 두었으니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건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재능에 더해 어렸을적부터 할무니가 졸라 좋은 기타도 사주고, 다른 악기들도 배우게 하고 그랬다니 재능이 꽃피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으리라. 

15살되던 나이에 어무니의 밴드에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그러던 와중 드러머가 밴드를 떠나게 되면서, 밴드에는 래리 그래험과 그의 어무니, 딱 2명밖에 남질 않았다. 그 무렵 래리 그래험은 베이스로 전향을 한 상태였는데, 드러머의 부재로 인한 빈 사운드를 메꾸기 위해 그의 베이스를 "thumping-and-plucking"라는, 타악기 효과가 나는 주법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오늘날 베이시스트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주법인 '슬랩 베이스' 주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기가 막힌 스토리지만 암튼 이게 슬랩베이스의 기원(?)이다.

요렇게, 베이스를 스파크 나듯이 쳤다는 것...

그의 환상적인 베이스 연주는 당시 라디오 DJ였던 슬라이 스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그는 슬라이 스톤과 함께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에서 음악 활동을 하게 된다. 그의 환상적인 퍼즈-베이스와 절묘한 싱코페이션, 그리고 힘찬 슬랩 주법은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의 음악을 규정하는게 결정적인 역활을 하게 되었고, 이런 그의 연주가 발휘된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Elf Agin)>는 시대를 대표하는 훵크 명곡이 되었다. 

그를 통해서 비로소 베이스 연주가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훵크 음악에서 베이스 연주자의 지위는 절대적이 되었다. 좀 과장하자면 베이스 없는 훵크란 상상할수 조차 없었고, 래리 그래험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훵크 베이스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에서의 그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슬라이 스톤과의 불화는 그를 더이상 그 밴드에 머무르게 할수 없게 하였다. 72년 그는 결국 밴드를 떠나고 그는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밴드의 베이시스트로써가 아닌, 당당한 훵크 밴드의 리더로써 곡을 만들고 프로듀스를 하고 싶어했는데 그 결실이 70년대 중후반 가장 뛰어난 훵크 밴드 중 하나였던 Graham Central Station 이다.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채결하고 73년에 셀프 타이틀 앨범을 발매하면서 활동을 시작한 Graham Central Station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더욱 깊어진 래리 그래험의 베이스 그루브와 구수한 보컬이 수많은 훵크 팬들을 사로 잡았던 것이다. 더욱이 74년 발표한 <Release youself> 앨범에서 그들은 스피디한 락넘버에서부터 이국적인 가스펠 록까지, 슬라이 스톤 못지 않은 다양한 훵크록을 선보였다.

음악듣기 - Today

음악듣기 - Free (live with Prince)

하지만 79년 밴드의 해체 이후 솔로 활동을 시작한 그래험은 80년 챠트 1위를 강타했던 <One In A Million You> 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이후 팝가수 Prince와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하고, 예전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 멤버였던 신시아 로빈슨이나 제리 마티니와 함께 다니며 과거 영광의 순간을 재현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현재 이 양반이 뭐하고 지내는지 본 기자 잘 모르겠다. 

암튼 대충 정리하자면 래리 그래험 이넘은 베이스라는 악기를 한단계 격상시킨 위대한 베이시스트이자, 새로운 훵크를 우리에게 선사한 록음악의 선구자라고 볼수 있다. 이제부터는 슬랩 베이스라는 말만 나와도 우리의 구수한 아자씨 래리 그래험을 생각하시라. 마커스 밀러나 스탠리 클락만 떠올리지 마시고...

그럼 래리 그래험에 대한 단락을 마치면서 프린스가 래리 그래험을 소개하기 위해 대중들을 향해 던진 한마디를 통해 훵크에서 그의 의미를 정리해 드리련다.

"Larry Graham is not funky, He is Funk Itself!"

 

Isaac Hayes

오늘 마지막으로 디빌 놈은 바로 아이작 헤이즈다. 이 양반도 훵크를 기반으로 한 소울음악을 선사하신 분이라 할 수 있는데, 훵크 연재 2편에서 소개해드리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다가 이렇게 소개하게 되었다. 늬거들 중에서 저 사람 이름 들어본 사람 몇이나 될까... 사실 훵크 팬이라는 본기자조차도 이 이름을 들은지 얼마 안됐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곡부터 들어보고 간다.

 

음악듣기 - That Loving Feeling

음악듣기 - The Look Of Love

아이작 헤이즈는 1942년에 태어났다. 다른 여타의 훵크 아티스트들 처럼 어렸을적부터 천재성을 나타내었는데, 5살에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을 시작하고 이후 피아노, 오르간, 섹소폰 등등을 독학으로 마스터 했다고 한다. 지방에서 간간히 밴드 활동을 벌이고 있던 와중, 소울 전문 레이블인 Stax 과 세션 뮤지션으로 계약을 채결하고 Stax 레이블의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함께 하기에 이른다. 후에는 세션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포터라는 사람과 함께 수많은 곡을 만들어 Stax 소속의 아티스트들에게 주기도 하였다. 스택스에 속한 아티스트중에서 유명한 넘은 지난 훵크 연재 1편에서 소개해드렸던 오티스 레딩이 대표적이다. 물론 오티스 레딩 앨범역시 아이작 헤이즈가 참여하고 있었다.

60년대 말 Stax 레이블은 오티스 레딩과 그의 백업밴드인 'the bar-kays' 덕분에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연재 1편에서 소개해드렸다시피 인기폭발 일보적전이었던 오티스 레딩과 the bar-kays가 67년 비행기 사고로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나서 스택스 레이블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스택스 레이블은 살아남기 위해 몸무림을 쳤고, 그런 상황에서 스택스 레이블의 비장의 무기는 다름 아닌, 이넘... 아이작 헤이즈 였다. 이런 배경하에 아이작 헤이즈는 솔로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67년 <Presenting Isaac Hayes> LP를 발매하며 데뷔한 그의 음악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것은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은 69년 앨범 <Hot-Buttered Soul> 을 발매하면서 부터였다. 이 앨범은 당시 소울음악계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심지어는 흑인음악의 대중적인 정의를 바꾸어버렸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이거이 문제의 앨범...

커티스 메이필드와 마찬가지로 3, 4분 짜리 라디오 방송용 포맷을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면서 10분짜리 곡을 아주 우습게 만들었다 이거다. 요 앨범, 겨우 4곡의 수록곡에도 불구하고 토탈 45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게 무슨 소린지 알만 하실거시다.

물론 그냥 무작정 리프 반복하는 Extended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10분 훌쩍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는 쉴세 없이 듣는이의 귀를 즐겁게 한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노라면 그가 마치 곡을 구성하는 마법사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가슴 울리는 리듬과, 깊고 느리게 반주되다가 절정에서 적당히 지랄(?)하는 기타 연주, 멋들어진 피아노 라인과 웅장한 혼 섹션, 그리고 그의 허스키한 보컬 등등의 요소가 신기에 가까운 능력에 의해 환상적으로 조합되어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아카데미상 받은 대박 앨범. 필자도 최근에 입수했다. 당근 자랑이다...

이런 음악적 스탈덕분에 영화 음악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재능을 보여주었는데 그 대표적인 앨범이 바로 <Shaft> 다. 아이작 헤이즈 필생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이 앨범으로 그는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된다.

 

음악듣기 - Theme From "Shaft"

음악듣기 - Cafe Regio's

뭐 그 이후로도 수많은 앨범들을 발표하시고, 넘들한테 곡도 주고, 넘들 앨범에 연주도 하시고, 프로듀싱도 하시고 졸라리 바쁘게 사셨다. 

수많은 명곡과 수많은 명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면 관계상 몇개밖에 소개해주지 못하는 본 기자의 심정, 늬거들은 절대 모를것이다. 혹시라도 옛날 깜씨들 앨범 가지고 있으면 혹시나 이 양반 이름이 크레딧이 올라와 있나 확인해 보는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 양반이 참여한 앨범이 졸라리 많기 때문이다. 

뭐 멀리서 찾지 않아도, 당장 이번에 대박터진 알리시야 키즈의 앨범에도 이 양반이 껄떡거렸다고 전해진다. 알리시야 키즈 앨범 있는 넘들은 얼렁 확인해봐라다. 없음 말구.

참고로, 이 양반, 미국 성인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에 요리사로 등장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본 기자 사우스 파크를 본적이 없어서 잘은 몰겠다. 물론 사우스 파크 OST에 참여한건 당연하고...


이번호에서는 훵크 록의 거장이신 슬라이 스톤과 훵크 베이스의 일인자인 래리 그래험, 게다가 쥑이는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인 아이작 헤이즈까지 나불거렸다. 훵크 음악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자 광분하는 기자, 오늘은 이제 더 이상 원이 없다. 

기사 마감일에 쫒겨서 허둥대면서 썼지만 이번에도 열분들께서 잼나게 읽어주셧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궁금한게 있다거나 혹시나 기사에 틀린거 있음 주저하지 말고 멜 쎄려라. 시간 아무리 안나도 답장 꼭 할테니... 

70년대 훵크 스타 시리즈는 다음 호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다음호에서 어떤 아티스트들을 다뤄줄진 본기자도 모른다. 꼴리는데로 할거다. 늬거들의 요청이 있으면 그걸 반영할지도 모른다.

그럼 이상! 굿바이 앤드 굿나잇! 

 

 

한달후에 훈련소에 들어아게 될 운명에 놓인
딴따라딴지 훵크 전도사 
박희봉(heeb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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