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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훵크 음악을 디벼주마 -2-

2002.2.18. 월요일
딴따라딴지 훵크 전도사 박희봉


열분들 다시 만나서 졸라 반갑다.

시작부터 말하기 좀 민망하지만, 본 기자 첫 기사의 설레임이 가시기도 전에 똥줄을 죄어오는 부담감이 밀려왔다.뭐 솔직히 말하자면, 일종의 연재에 대한 부담감이었다고나 할까...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일을 벌여놓은 것 같아 몇날 며칠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하면서 연락 다 끊어 버리고 잠적할까 생각도 했지만 (편집자주: 뭣이?) 열분들의 끊임없는(무려 기사 개제후 2틀동안이나... -_-v) 격려,질문, 그리고 딴지 멜질을 받고서 힘을 얻었다. 

모든게 열분들께서 관심가져 주신 덕이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참고로 독신 여성의 멜질은 꼭 답장 하겠다... 

그럼 잡설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긴장하시라...

 

훵크를 기반으로 둔 소울가수들

훵크 하면 그저 찌기찌기징하는 기타연주와 뚜루루땁딱 뜯어대는 베이스 슬랩을 생각하신 독자열분 들이라면 지난 기사에서의 아티스트들과 음악들을 다소 받아들이시기 힘들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무한 딸딸이식 훵크 이외에도 여러 가지 훵크의 형태가 있으며, 훵크를 알기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소울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 또한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본 기자가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바로 지금부터 소개할 아티스트들이 또한 소울가수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훵크를 기반으로 둔 소울가수들이니 두고두고 알아두면 자손만대에 복이 있을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그들과 그들의 음악세계를 한번 디벼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제 아무리 음악이 좋다한들 들어보지 않으면 말짱 꽝인지라, 이번에도 친절하게 mp3 파일들을 링크시켜놓았으니, 독자 열분들이 음악과 함께 기사를 즐겨주시면 감사하겠다. 자 간다!

 

Marvin Gaye (1939-1984)

스무쓰하고 감미로운 소울하면 바로 요 사람, 마빈 게이다. 소울 역사상 가장 재능있는 소울 아티스트로 평가 받는 인물이기도 한데 본 기자 또한 적극 동감하는 바이다. 

접때는 오티스 레딩이 제일 훌륭한 소울가수라고 해놓고 먼 딴소리냐고? 켁, 미안하다. 두 분 다 졸라 위대하셔서 우열을 가리기는 불가능하지만, 암튼 둘다 최고임에는 틀림없다고 알면 되겠다. 

마빈 게이 이사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겨우 세살의 나이에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의 찬란한 음악 인생을 시작하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드럼을 마스터하며 음악적 내공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간헐적인 음악 활동을 벌이고 있던 와중에 디트로이트에서 콘서트를 하다가 운명적인 인간을 한명 만났으니, 그넘이 바로 베리 고디 주니어 되겠다. 

여기서 아하~ 하는 독자도 있을테고, 이해가 안가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베리 고디 주니어 이넘이 바로 지난호에서 허벌나게 소개했던 Motown 레이블의 대빵, 바로 그넘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바로 요 앨범이다. 독자열분들, 지금 즉시 이 사진에 대고 세번 절하도록..

이 양반이랑 만났으니 Motown 레이블하고 인연을 맺은건 말안해도 뻔한 이치... 1961년 계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모타운 소울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거의 10년의 세월이 흐를무렵까지 그는 그저 모타운표 힛트 제조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1971년 그가 결국 일을 내게 된다. 바로 그의 절대 명반이자 흑인음악 역사상 최초의 컨셉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는 <What's Going On> 이 바로 그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너무 많은 것들이 당신을 울립니다.

형제여, 형제여 너무 많은 것들이 당신을 죽게 합니다.

전쟁이 해답은 아닙니다.

사랑만이 증오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위의 <What's Going On> 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앨범은 이전 모타운과 여러 흑인 소울 레이블들이 추구하던 사랑 노래들을 탈피하여 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표출한 작품이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유기적인 구성으로 앨범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컨셉을 유지함은 물론, 음악적인 면에서도 기존의 소울 음악과는 확실히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분위기에 절묘하게 조화된 그의 보컬과 연주들, 그리고 유려하게 전개해 나가는 콩가 드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정돈되어 있는 앨범이 바로 본작 되겠다. 독자 열분들, 솔직히 말해서 지난호에서 소개해드린 노래들이 좀 촌티나고 옛날 분위기나는거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What's Going On> 이거는 30여년이 지났지만 전혀 촌티 안남이다. 들어보면 안다.

음악 듣기 - What's Going On

               Inner City Blues (Make Me Wanna Holler)

그런데 이런 대박 앨범이 세상빛을 못 볼뻔했다니, 생각만해도 등골이 오싹해져온다. 뭔소리냐고? 

당시 모타운에 소속된 가수들은 죽어라 사랑 노래만 부르면서 챠트에서 성공하면 그게 장땡이던 시절이었다. 울나라 러브 발라드 가수들이나 비슷한 입장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그 발라드 가수중 하나가 생소한 음악에 컨셉까지 실린 어려운 앨범을 가지고 나왔으니, 결국 사업가일 수 밖에 없는 베리 고디 주니어가 음반을 발매해 주려 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별로 놀랄 것도 없음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음악에 자신이 있었던 마빈 게이... 배짱좋게 앨범을 발매해주지 않으면 음악을 때려치우겠다고 협박아닌 협박을 늘어놓은 결과 결국 앨범은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발매된 앨범이지만 막상 나온 담에는 수백만장의 판매고와 3곡의 넘버원 힛트 싱글이라는, 외형적으로도 베리 고디의 고집이 무색할 정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외형적인 성공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주체적인 음악성을 검증받으며 더 이상 모타운 레코드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후 스티비 원더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등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도 볼 수 있다. 암튼 그 이후로도 끊임없는 창작 활동으로 수많은 소울 명반들을 발매하시면서 소울계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굳건히 차지하고 계셨다.

본기자가 열라 아끼고 본 기자랑 친분 전혀 없는 디안젤로도 졸라 아낀다는 명반 <I Want You>... 초죽음이다.

 

음악 듣기 - Soon I'll Be Loving You Again

               After The Dance

하지만 천재는 요절한다는 망할놈의 법칙은 마빈 게이 또한 가만히 놔두지 않았으니... 84년 자신의 생일 바로 전날인 4월 1일,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아부지와 말다툼끝에 어이없게도 아부지가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이넘도 마빈게이 스탈이 풀풀 풍기는 넘중 하나... 음악적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모자이크 처리.

늙어 죽을 때까정 살아 남아서 좀더 많은 음악을 들려줬어야 마땅할 대 뮤지션으로는 너무나 기가막힌 죽음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그가 남겨놓은 수많은 소울 마스터피스는 후대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자손만대에 빛나고 있음, 두말할 필요 없다. 그냥 요즘 잘나가는 소울 아티스트들만 보더라도 마빈게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할말은 끝도 없지만, 마빈 게이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이만 접는다. 뭔가 좀 아쉽다 하시는 독자열분들은 그의 앨범을 사서 듣는다거나 웹서핑을 통해 mp3를 찾아 들으셔도, 본기자 굳이 말리지 않겠다.

 

Curtis Mayfield (1942-1999) 

기타를 든 소울 가수, 커티스 메이필드. 'black Bob Dylan' 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마빈게이와 더불어 70년대를 대표하는 소울 아티스트중 한 명이 바로 이 커티스 메이필드라는 양반이다.

60-70년대에 소울과 진보된 훵크 음악을 내세우며 수많은 창작 활동을 벌이던 사람인데, 오죽하면 이 사람 때문에 '시카고 소울' 이라는 말까지 태어났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음악적 업적에 비해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데 그것은 그의 실험 정신이 깃들어진 노래들이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이사람, 특유의 창법을 지긴 가수로써, 훌륭한 솜씨의 작곡가 및 프로듀서로써, 그리고 뛰어난 기타리스트로써 여러 가지에 다재다능한 아티스트였다. 한마디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했단 말이다.

그가 처음으로 음악 생활을 시작한건 'The Alphatones' 라는 소울 그룹이었다. 하지만 그의 본격적인 활동은 또다른 소울 그룹 'The Impressions' 에 참여하면서 부터인데, 팀의 리더격이었던, Jerry Butler가 솔로 활동을 위해 팀을 나가면서 부터 그룹의 리더로써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60년대 'The Impressions' 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울가수들을 위해 곡을 써주면서 송라이터로써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시카고 소울'로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흑인으로써의 자각을 노래 가사에 담은 선구자중 하나라는 점인데, 대부분 사랑 노래만 불러제끼던 모타운 소울과는 상당히 다른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가사를 노래에 실었던 힘은 바로 그가(그의 음악적 동료인 Eddie Thomas와 함께) 독립 레코드 레이블인 'Curtom Records' 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노래 몇 개 들어보시라.

음악 듣기 - Beautiful Brother Of Mine

               Right On For The Darkness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는 60년대의 이러한 활동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과감한 솔로 활동이라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이때부터 전보다 더욱 실험적인 곡들을 양산해내기 시작한다. 수많은 스트링과 혼, 그리고 퍼커션 리듬이 결합된 그의 곡들은 심지어 심포닉 소울이라고 불려지기까지 했다. 자연히 곡들의 러닝타임도 길어져 7,8분은 우습게 넘어간 곡도 허벌나게 많았으니, 라됴 방송용 포맷이랑은 쪼까 거리가 멀었다는건 독자열분도 대충 눈치낄 수 있으리라. 

암튼 진보된 소울과 훵크의 개척자로써 훌륭하게 솔로 활동을 벌이던 74년, 드디어 그의 음악 인생을 대표할 만한 마스터 피스를 내놓게 되었으니, 그 앨범이 바로 <Superfly>다.

일류 아티스트들에게 명반 하나쯤은 기본, 커티스의 경우 요 앨범이 바로 명반되겠다.

 

음악 듣기 - Freddie's Dead

               Eddie You Should Know Better

                

이 앨범의 엄청난 성공은 그를 스티비 원더, 마빈게이와 함께 70년대를 이끌어가는 소울가수로써 그 자리매김해주게 된다. 하지만 정상의 기쁨에 도취되지 않고 그는 쉬지 않고 70년대 내내 놀라울 정도로 창작활동을 벌였다. 1년에 2장의 앨범을 발매하는 것도 예사였다. 여기에도 성이 안찼는지 'The Staple Singers', 'Aretha Franklin' 등 다른 동료 소울가수들에게 끊임없이 곡들을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물론 그의 활동은 80년대에도(물론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그전보다는 뛰어나지 못했지만) 끊이질 않았다.

요것이 바로 그 앨범이다. 목아래 전신마비 상태로 발매한...

그런데 Curtom 레이블을 부활시키고 새 앨범까지 준비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선보이려고 야심차게 활동하던 1990년 어느날, 비극적인 사고가 벌어졌으니... 콘서트 도중 조명기구가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후 그만 목 아래가 마비되고 만 것이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뮤지션 생활은 물론 거의 모든 일들이 그에게 불가능해졌고, 단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말하는 것뿐이었다. 기타리스트로써의 생명 역시 끝났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을 거듭하며, 1996새 앨범 <New World Order>를 발매하여 세상을 놀래키기도 했다.

결국 이 앨범을 발표한지 3년 후인 1999년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마빈 게이의 경우처럼 후대의 아티스트들로부터 끝없이 추앙받으며 그의 음악과 영향력은 계속이 이어져 오고 있다. 

커티스 메이필드의 영향받은 넘, 콕 찍으라면 이넘이다. 역시 음악적 프라이버시 유지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

 

당근, 창법이나 음악에서 그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유명 뮤지션도 한둘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커티스 메이필드의 음악적 무게를 대충 눈치깔 수 있게 하는 예가 하나 있으니 94년 발표된 트리뷰트 앨범 되겠다. 

앨범에 대해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참여한 뮤지션들의 면면 만을 뵈도 음악계에서 커티스의 지명도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레니 크래비츠, 휘트니 휴스턴, 브루스 스프링스틴, 에릭 클랩튼, 테빈 켐벨, 아레사 프랭클린, 비비 킹, 로드 스튜어트, 필 콜린스, 스티비 원더, 그리고 엘튼 존... 어떠신가?

 

Stevie Wonder (1950~아직 살아있음) 

열분덜... 위에서 다뤄준 마빈 게이나 커티스 메이필드는 몰라도 이 사람 이름정도는 다 알거라고 본다. 

이 양반... 한마디로 놀라운 사람이다.(그래서 이름도 Wonder다) 좀 과장하자면 70년대 팝무대는 스티비 원더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흑인음악사에서뿐만 아니라 흑백을 아우르는 팝 역사에서 그의 위치는 단연 독보적이다. 

이 인간, 노래도 허벌나게 잘하고, 남부럽지 않을 멀티 인스투루멘탈 플레이어다. 물론 프로듀싱 능력은 말 안해도 콩떡이다. 힛트곡 허벌나게 많은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앞이 안보인다는 장애를 이겨내고 이 모든걸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Wonder다. 그리고 이 양반 부처님을 삶아 드셨는지, 앞이 안보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잃지 않으셨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캡숑이라는 말이다.

그는 1950년 Steveland Morris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조산아로서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던 도중 산소 과다공급으로 그만 눈이 멀게 되었단다. 즉 태어나자마자 장님이었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이미 피아노하고 드럼을 마스터했다고 한다. 물론 노래도 무진장 잘했다. 그러던 중 우연이랄까 운명이랄까, 일곱살 되던 나이에 디트로이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이제는 열분들도 알만 하실거라고 본다. 

모타운의 마스코트이던 십대 시절...

앞도 못보는 꼬마애가 노래도 허벌나게 잘하고, 하모니카에 드럼에, 피아노까지 죄다 마스터 했으니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는건 시간문제였으리라. 

소문은 결국 모타운 레이블 대표인 베리 고디 주니어의 귀에 까지 들어갔고, 스티비원더는 겨우 11살의 어린 나이에 모타운 레이블과 정식 계약을 채결하게 된다. 이때 예명으로 스티비 원더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놀랍다는 의미에서 Wonder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60년대 내내 수많은 힛트곡들을 양산하며 노래하고, 연주하고, 심지어는 작곡까지 했는데, 지가 부르는건 물론이고 넘들까지 챙겨줬다고 하니 다시 한번 놀래지 않을수 없다.

하지만 이건 그저 전초전에 불과했으니... 위에서 설명한 마빈게이나 커티스메이필드의 경우처럼 스티비 원더 이 양반도 70년대에 이르러서야 진짜배기 음악을 선사하기에 이른다. 

기존의 계약이 끝나가던 1971년, 일방적으로 이끌려 다니다시피 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 철저한 통제권을 보장하는 계약을 채결하는데, 마빈 게이의 경우처럼 스티비 원더또한 레코드 자켓 껍데기만 모타운일뿐 음악은 진정한 스티비 원더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요때부터 진퉁배기 스티비 원더음악이 쏟아져나온 것은 말해봤자 잔소리다.

음악 듣기 - Superstition

               Lately

              

 

수많은 골드 디스크는 물론, 그래미 어워드 등 각종 상을 휩쓴 스티비

70년대 내내 발표하는 앨범마다 예술에 초대박이었으니,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발라드 넘버에서부터 베이스와 신디사이져 리프가 넘실대는 훵키한 넘버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인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 예술곡이 와르르르 냅따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상복까지 터져서 'Best R&B Artist', 'Best Song', 'Best Male Vocalist', 'Best Album' 등등 수많은 분야를 싹쓸히 해갔다. 

평소 존경하던 스티비 원더 옹한테서 잘한다고 칭찬먹어서 입이 귀에 걸린 J모씨

물론 그의 예술은 70년대를 관통하면서 80년대에서도 수많은 힛트곡들을 양산하며 그 건재함을 굳건히 지켜나갔다. 소울이나 스티비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덜도 80년대의 메가 히트송인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나 <Part Time Lover> 는 다 기억할거다.

비록 요즘은 좀 활동이 뜸하지만, 그가 남긴 음악적 공로가 너무 방대한 탓에 그의 음악을 듣고 눈물 콧물 질질흘리며 자란 넘들이 챠트를 활개치고 있다는 정보가 방금 본 기자의 레이다에 포착되었다.

얼마전 스티비 원더가 개안수술을 받는 다는 소식이 들렸다. 보는 감각이 없어진 대신에 듣는 감각이 발달하여 음악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 오히려 신의 은총이라고까지 말했던 그가 수술해봤자 겨우 10분밖에 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하겠다고 했단다. (결국 했는지 안했는지 본기자 지금 알길이 없다. 아는 넘있음 멜세려라)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그의 자식들을 보기 위해서란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딸이 이쁘지 않냐고 노래까지 불러댈만큼 부성애가 남달랐던 그였기에 이는 더욱 감동적이다. 천재적인 뮤지션이기에 앞서 누구보다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휴먼 비잉 스티비 원더. 그렇기에 그가 수많은 흑인들과 장애인들의 우상이 될수 있었던 것이다.

음악 듣기 - Isn't She Lovely (자기 딸에게 바치는 곡, 바로 요거다.)

               As

                     

 

참고로 본 기자, 열분들에게 좋은 노래를 소개하고자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알째비기 노래들을 선정할려고 했는데 결과는 애로사항만 꽃피었다 그거다. 그의 수많은 명곡들중에서 단 몇곡만 뽑는 것 자체가 웃기는 짬뽕이란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본인 꼴리는데로 선정하였는데 부디 독자열분들은 저 노래말고도 허벌나게 좋은 노래들이 많으니깐 다른 곡들도 꼭 들어봐주시길 바라는 바이다... 

 

 

마치며

 

아쉽지만 여기에서 훵크 강의 2편을 끝마칠까 한다. 비록 오늘 소개한 아티스트들이 100% 순수 훵크만 해대는 아티스트들은 아니지만 소울/훵크 역사에서 빼먹으면 안될 인물들이라 꼭 다뤄줘야 했다. 하지만 아직 열분들에게 소개 안해드린 조지클링턴, 슬라이스톤 등등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머질 것같은 진퉁 훵크 아티스트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계속 관심가져주시길 바라는 바이다. 

 

물론 훵크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데 필요하다면 다음호 주제 역시 본 기자 꼴리는대로 변경될수 있다는 점 또한 양지하시고...

  

이상! 굿나잇 앤 굿바이! 

 

 

추신: 이 기사를 쓰게 도와주신 수많은 인터넷 웹사이트들과 주위분들께 감사드림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언제나 울지 않는 
딴따라딴지 훵크 전도사
박희봉(heeb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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